[사설] 절반의 성공, 우키시마마루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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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45년 해방 직후 수천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을 태우고 한국으로 가던 중 해상에서 폭발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 폭침사건에 대해 56년 만에 일본 법원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인 생존자와 유족들이 요구한 배상 규모에는 훨씬 못미치고,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요구가 기각되긴 했지만 안전수송 의무를 태만히 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 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은 평가할 만하다.

교토(京都)지방법원은 "징용자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일본 정부는 최선의 안전대책을 강구했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했다" 며 확인된 생존자 15명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1인당 3백만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65년 체결된 한.일협정으로 국가간 배상문제는 완전히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을 근거로 전쟁피해 배상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던 법원의 관행에 비추어 일단 진일보한 판결이다.

이번 결정이 1심 판결에 불과하며 국가책임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어진 전례가 있으므로 더 두고볼 일이긴 하지만 계류 중이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유사한 소송에서 의미있는 준거(準據)가 될 것으로 본다.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의 말마따나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보상보다 철저한 진실규명이다. 이 점에서 이번 판결은 우리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사고원인과 희생자 수에 있어 피해 당사자들과 일본 정부의 주장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보복을 두려워한 일본인 승무원들이 저지른 자폭(自爆)이라는 주장과 미군이 부설한 기뢰 탓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고, 희생자 수도 5천명이라는 주장과 5백24명이라는 주장이 맞서 있다.

법원은 진실규명을 위한 충분한 노력없이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채택한 혐의가 짙다. 사고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원혼을 달래고 한.일간 과거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길임을 일본 정부와 법원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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