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여는 새벽시장] 부산 충무동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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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부산에 단하나 뿐인 서구 충무동 새벽시장은 매일 오전 2시30분쯤이면 어김없이 뱃고동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자갈치시장과 부산공동어시장 사이 바닷가에 위치한 시장에 들어서면 비린내가 코끝에 스며든다.

어물전에서 3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개를 팔아온 홍점례(69 ·서구 초장동)할머니도 매일 이 시간이면 좌판을 펼친다.

“아침까지 꼬박 까서 팔아도 5천원 벌기도 어렵심더.퍼뜩 좋은 세상이 와야 카는데….”

홍할머니의 눈은 지나가는 손님에 가 있지만 진주조개(일명 홍합)를 까는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30분이 지난 오전 3시,어물전 옆 농산물 장터의 1평도 되지않는 가게 주인 이기진(73 ·부산시 동구 수정동)할머니가 문을 연다. 마늘 ·양파 ·쪽파를 소쿠리에 담는 손길엔 정성이 가득 배어 있다.

그녀는 “자식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낼 수 있도록 해준 농산물이 고마워 장사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자갈치시장 쪽 골목 입구의 천하식육도매점도 네온사인을 환히 밝힌 채 안영기(44)씨 부부가 바쁘게 고기를 썰고 있다.

“할인점이나 백화점 고기보다 40%는 싸게 팔기 때문에 단골이 3백여명은 넘슴니더.”

반찬 골목에서 가장 큰 가게인 ‘맑은 된장’집은 오전 5시쯤부터 손님이 모여들기 시작한다.젓갈류 10여가지를 포함해 40여 가지의 반찬이 불빛을 받아 윤기가 자르르하다.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는 반찬골목을 지나가는 행인들조차 입맛을 다시며 가게를 기웃거리게 된다.

40대 후반의 주인은 “백화점 ·할인점보다 포장은 허술하지만 맛과 신선도는 최고”라며 자랑을 했다.이집의 단골 손님은 부산시내 식당 주인들.

낮에는 시간을 낼 수 없어 새벽에 나와 밑반찬을 구입한다.김해 ·양산 ·마산 ·창원 ·울산 등의 학교 ·병원 등의 단체 급식소에서도 찾아온다.

일요일 아침에는 시장 구경도 할겸 반찬을 사러오는 주부 ·직장인 등으로 발디딜 틈도 없다.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장을 아장아장 걷는 어린이의 모습도 정겹다.

쉴새없이 골목을 누비며 짐을 배달하는 날씬하게 개조된 리어카,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이어 나르는 국밥집 아낙네들의 모습도 정겹기는 마찬가지다.

충무동 새벽시장은 1960년대 초부터 서민들과 애환을 간직해 왔다.90년대 중반 엄궁동 농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하고 사상구 감전동 새벽시장이 폐쇄되면서 부산에서 유일하게 새벽에 활기를 띠는 곳이 됐다.

이 시장 상인은 5백여명.2백여명은 반찬·농산물 가게에서,나머지는 좌판에서 장사를 한다.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오전 9시쯤 파장 분위기였으나 요즘은 불경기 탓에 오후까지 장사하는 상인이 늘고 있다.

부산=강진권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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