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찰총국 소속 ‘황장엽 암살조’ 2명 검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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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지난달 31일 미국을 방문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주최의 토론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당시 황 전비서는 북한 체제와 인권 상황을 비판한 뒤 “나는 조금도 김정일의 테러를 겁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황장엽(87) 전 북한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탈북자로 위장해 밀입국한 북한 정찰총국 요원 두 명이 검거됐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20일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소좌(우리의 소령 계급에 해당) 김명호(36)와 동명관(36) 등 두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과 살인예비 음모 등 혐의로 구속했다. 북한의 정찰총국은 지난해 과거의 작전부, 정찰국, 35호실 등 노동당과 군에 흩어져 있던 대남 공작 조직을 통폐합한 곳이다. 산하에 해외정보국, 작전국, 정찰국 등 3개의 부서를 두고 대남 간첩 파견과 남한 사회 교란 업무 등을 하고 있다.

국정원 등 정보 당국에서는 이번 천안함 침몰도 정찰총국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된 이후 소속 요원들이 간첩으로 내려와 우리 당국에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과 검찰에 따르면 김명호 등은 지난해 11월 정찰총국장 김영철 상장(우리의 중장에 해당)에게서 직접 “황장엽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남한에서 황 전 비서의 동향과 거주지, 병원, 만나는 인물 등의 정보를 수집해 정찰총국에 보고하고 이후 암살 명령이 내려오면 살해하라는 내용이었다. 김명호 등은 같은 달 중국으로 나와 옌지에 있는 정찰총국 연락소에서 지도원과 접선해 남한에서의 접선 및 활동 방법 등을 교육받은 뒤 같은 해 12월 태국으로 밀입국했다.

태국 경찰에 붙잡힌 김과 동은 각각 올 1월, 2월에 국내로 입국했다. 검찰 관계자는 “태국의 경우 탈북자를 본인의 의사를 물어 남한에 인계하게끔 돼있는 점을 활용했으며, 가명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입국 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이 나와 결국 신분이 발각됐고 암살 계획 등을 자백했다고 국정원과 검찰은 밝혔다. 국정원과 검찰은 국내 고정간첩 또는 친북 조직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북한에서 권력서열 26위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을 맡고 있던 황 전 비서는 1997년 2월 중국 베이징의 한국 총영사관을 통해 망명하고 같은 해 4월 20일 한국에 들어온 뒤 살해 위협에 시달려 왔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황 전 비서가 인민을 버렸다는 이유로 그를 ‘표적 1호’로 지목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암살 지령을 내린 것도 황 전 비서가 북한 체제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김정일 정권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6년 12월에는 자유북한방송에 황씨를 비난하는 경고문과 붉은색 물감으로 칠한 황씨의 사진, 그리고 손도끼 한 자루가 담긴 ‘괴소포’가 배달되기도 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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