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화이트 칼라' 벗고 '기름쟁이'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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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구시 중구 대봉동 성호 카서비스센터의 도수길(都秀吉.38)사장이 21일 오후 세차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얼굴은 땀과 기름으로 뒤범벅이 됐지만 힘든 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都사장이 걸어온 지난 10년간의 이력(履歷)이 눈길을 끈다. 영남대 철학과 졸업, 출판사 직원, 공공기관 홍보담당, ㈜우방 홍보과장, 그리고 카센터 사장.

그는 한때 대구에서 잘 나가던 주택건설업체인 ㈜우방의 홍보과장이었다. 사무실에서 연필만 굴리던 그가 지난해 8월 회사가 부도나자 고민 끝에 자동차정비업소를 차리기로 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동차정비학원 등록이었다. 엔진.차체.배선 등 자신에게 생소한 분야들을 붙잡고 씨름했다. 그리고는 전 재산인 24평 아파트를 전세놓은 돈으로 카센터를 인수했다.

그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땀을 흘리고 싶어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 '손에 기름을 묻히려고 대학까지 나왔느냐' 는 부모님과 '왜 고생을 사서 하려느냐' 는 아내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

그가 카센터를 개업한 데는 승용차를 몰면서 느꼈던 불편함도 한 원인이 됐다.

"차 수리비도 들쭉날쭉하고, 고치고 나면 또 고장나고…. 자동차를 손본다는 것이 여간 짜증스럽지 않았어요. 이참에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

'기름쟁이' 로 전격 변신한 그는 3개월 만에 흑자를 내는 등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개업 후에 채용한 정비기사 두 명과 함께 자신의 차량을 손보듯 꼼꼼하게 일을 하자 고객들이 몰린 것이다. 그는 지난 4월엔 정비기능사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카센터 사장이 되기 전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회사의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몇달간 급여가 나오지 않자 인생경험을 쌓고 생활비도 벌 요량이었다. 두달간 낮엔 우방의 홍보과장, 밤엔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누가 얼굴을 알아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부끄러움이 사라지더군요. "

손님 집으로 정성껏 배달까지 하자 매상이 크게 올랐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 흘리는 땀은 정말 값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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