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을 외면한 금리인하 효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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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은행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콜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여 금리를 인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금리를 낮춘다고 경기가 살아날 것 같지 않다는 얘기다. 부작용만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불과 한달 전엔 한은 스스로도 그렇게 봤었다. 박승 총재는 지난달 금리를 동결하면서 "돈을 풀어도 기업으로 가지 않은 채 주식.채권시장의 투기만 부추기고 부동산 투기마저 재연될 수 있다"며 "현재 시중에는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돈이 풀려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번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격적인 금리인하로 나타났다. 한은이 입장을 바꿔야할 만큼 경제상황이 변하지는 않았다. 물론 짐작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한은이 금리를 동결했을 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한은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 서운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연일 경기부양적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직간접적으로 금통위의 금리인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시장이 인정하지 않고, 한은 스스로도 수긍하지 못하는 금리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도한 효과는 거두지 못하면서 시장의 혼란과 중앙은행의 신뢰성 손상이라는 대가는 크게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시장과 외신들은 이번 금리인하 조치에 비판 일색이다. 금리인하의 효과는 벌써 반감된 셈이다.

한은이 금리를 내리던 날 미국과 홍콩의 통화당국은 금리를 올렸다. 세계적인 금리인상 추세 속에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낮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물가가 불안해지면 한은은 도대체 무슨 논리를 들고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