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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한탕 유혹' 넘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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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B공업 장모(75)회장 일가 납치사건의 용의자 김모(30)씨가 인터넷 범죄 사이트를 통해 범행을 기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이트에 범행계획서를 올려 놓고 공범을 모집하는 등 일련의 '작업'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동반 자살할 사람을 모집하거나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 갖가지 범죄가 발생했으나 납치 사건을 위해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공범을 모집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김씨가 범죄를 구상한 것은 지난 8월. 포털사이트의 '범죄카페'에 '공범 2인 모집, 5000만원 보상, 관심있는 분 연락처 남겨주세요'란 내용의 글을 수십차례 남겨 일단 공범 2명을 포섭했다. 이 두명의 지원자가 공범 4~5명을 추가로 포섭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팀 구성을 마쳤다. 김씨의 제의에 솔깃한 20, 30대 두명이 김씨와 접촉했으나 도중에 포기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범인들은 두 차례에 걸쳐 범행장소를 답사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지난해 12월 정모(30)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범죄카페에 '한탕하자'는 글을 올린 뒤 실제 강도에 나섰다. 인터넷에서 물색한 공범이 채무자 집으로 찾아가 쇠파이프로 8~9회 내려치고 현금 60여만원과 신용카드 등을 훔쳤으나 살해하는 데 실패해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9월에도 인터넷에서 만난 20대 남성 두명이 20대 여성 한명을 살해했다.

이처럼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익명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ID) 등을 이용해 포털사이트에 가입, 인터넷을 이용하면 범행 후 쉽게 추적당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만나 범죄를 저지를 경우 공범끼리도 신상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수사기관이 범인 가운데 일부를 검거해도 공범을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과 인터넷 업체 모두 범죄에 속수무책이다. 이번에 검거된 김씨가 공범을 모집한 포털사이트에서 '전과자' '한탕'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각각 36개와 39개나 되는 범죄카페가 나타난다(사진). 범죄를 모의하고 동조자를 찾는 데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재규 대장은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절도나 살인 등 범죄를 공모하는 게시물을 감시하고 있으나 현행 법으로는 내란.외환 등 소수의 범죄를 제외하고는 범죄 예비음모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죄 가능성이 큰 게시물을 추적 감시하고, 불온한 내용의 사이트에 대해 정보통신부에 폐쇄를 요청하는 것이 전부라는 설명이다.

이수기.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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