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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수하 여사만 아는 '사망 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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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 사실이 공식 발표된 11일 프랑스 파리 근교 클라마르의 페르시 군병원 앞 분위기는 오후가 되면서 급변했다. 아라파트가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1000여명의 아라파트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슬픔보다는 분노가 넘쳐났다. 군중은 "부시(미국 대통령)와 샤론(이스라엘 총리)은 살인마"라고 외치면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병원 담벼락엔 샤론을 성경에 나오는 살인자 바라바에 비유한 낙서도 있었다. 아라파트를 잃은 것에 대한 애통함이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증오로 바뀐 것이다.

사실 프랑스.영국에선 "아라파트가 사망한 것은 이스라엘이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 내의 어둡고 축축한 방에 3년 동안 감금해 아라파트의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란 주장도 많다. 그러나 아라파트 지지자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아라파트가 살해당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측은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에 의해 독살됐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 측은 부인한다.

문제는 아라파트의 사망 원인이 정상적으로 공개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아라파트가 숨지기 전 입원했던 페르시 병원 측은'개인 비밀 보장'규정을 내세워 아라파트의 부인인 수하 여사에게만 사망원인을 알렸을 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하 여사도 입을 다물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도 사망 원인을 놓고 독살 가능성, 백혈병 전 단계 골수질환 등 다양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아라파트 개인의 사생활 보호도 중요하지만 중동의 평화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라파트 사망의 원인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샤론을 살인마로 기억하고, 이스라엘을 한층 더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팔레스타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푸는 것은 한층 더 어려워진다. 수하 여사가 대의를 위해 진실을 밝히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제3자인 병원 측이 역사를 위해 진실을 밝히는 게 온당하다.

박경덕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11월 13일자 14면 '수하 여사만 아는 사망 원인'기사에서'살인자 바바라'는 '살인자 바라바'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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