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드라마화 하는 정치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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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를 보면 미국의 뉴욕 타임스를 연상케 된다. 1면의 머리기사 수를 평균 5~8개로 제한하면서 그날의 중요한 의제를 굵직하게 뽑아 제시하는 것, 국제뉴스에 1면을 비롯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비중 있게 다루는 것 등이 편집방향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의학뉴스를 1면에 내놓고 관련기사에서 심층적인 설명과 처방을 다루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편집방식을 차별화해 권위적인 정론지로서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조금 아쉽거나 개선됐으면 하는 점도 있다.

첫째, 드라마화(dramatization)하는 정치뉴스 보도방식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차기 대통령 자리를 두고 치열한 2각, 3각관계를 벌이고 있는 대선 주자들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인 양 그들의 경쟁과 갈등 양상을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자주 드러난다.

13일자만 보아도 4면에 경기도 이천 세계도자기박람회장을 찾은 민주당 김중권 대표가 자기(瓷器)를 빚으며 환하게 웃는 사진기사와 민생 투어라는 명목으로 경기도 일산의 한 기원을 찾아 주민과 얘기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사진기사가 같은 크기로 게재됐다.

자기를 빚는 것을, 민생 투어 중에 기원을 찾은 것을 모든 국민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쇼맨십적인 요소가 다분한 정당 대표들의 행보를 연일 지면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정치적 뉴스에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해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4일 4면에 실린 'MBC를 찾아간 야 언론특위' 기사를 보면 드라마의 조연급 연기자들이 한마디씩 던진 대사를 열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과연 어떤 핵심 문제에 관해 논의를 했는지, 했으면 무슨 결말이 나왔으며 앞으로 어떤 개선 방향이 도출됐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참석한 몇몇 의원과 방송사 사장의 대화만 발췌해 싣는 것은 일상적인 얘기만 나누다 '내일 이 시간' 으로 넘어가는 일일연속극과 뭐가 다른가?

둘째,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지만 꼭 빠지지 않고 게재되는 기사가 '사람과 사람' 면의 동정들이다. 그런데 동정란에 나오는 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 것인가?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나오고, 공로패 받는다고 나오고, 상 탔다고 나오고, 주제발표한다고 나오곤 하는데, 학위 받는 사람이 하나 둘이고 상 받는 사람이 또 한두 명인가? 게다가 그들만의 잔치를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는가? 상당 부분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청탁(?)에 의해 채워지는 듯한 동정란을 과감히 폐지하고,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이 있는 장으로 이를 개편할 용의는 없는지 물어보고 싶다.

13일자에서 40대 석사 처녀의 화훼 벤처를 다룬 기사와 60대 국졸 농부의 두충주 개발에 관한 기사를 한데 묶어 게재한 '농촌에서 캐낸 희망 2제' (19면)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셋째, 아무리 객관적이고 논리정연한 심층적 기사를 연일 보도해도 함께 게재되는 광고에 과장된 내용이 많고 허위적인 요소가 있다면 신문 전체의 이미지는 그만큼 싸구려가 된다.

뉴욕 타임스의 권위와 명성은 신문에 광고를 의뢰하는 광고주들도 그만큼 유력한 데서 비롯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이나 확실한 보장이 없는 부동산 모집광고 등은 신문사 자체적으로 유보할 수 없는가? 요즘 경제가 어렵고 그에 따라 신문사의 경영도 어렵다고 하지만, 타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언론의 진실보도라면 게재되는 광고 또한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천일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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