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가빈의 스파이크, 5개월 대장정 마침표 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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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에 등극한 삼성화재 가빈. [대전=연합뉴스]

삼성화재 가빈(24)의 마지막 오픈공격이 현대캐피탈 코트에 꽂히자 신치용 감독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코트에 드러누웠다. 2시간26분의 피 말리는 승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삼성화재 선수들은 가빈에게 공격을 연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10일간 7경기를 치르는 ‘살인 일정’에 풀세트 접전. 주전 선수 대부분이 30대에 접어든 이들의 투혼은 ‘가빈화재’ ‘몰빵배구’라는 비아냥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삼성화재가 1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 7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3-2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2007~2008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프로 출범 후 네 번째, 실업배구 시절을 포함해 12번째 정상에 섰다. 최우수선수상(MVP·상금 500만원)은 챔프전 7차전에서 50득점(역대 한 경기 최다득점 타이)을 올린 가빈의 몫이었다.

◆프로배구 사상 최고 명승부= 가빈이 스파이크를 성공시키면 어김없이 현대캐피탈 박철우(31득점)가 솟아올라 상대 코트에 맹폭을 퍼부었다. 2세트 둘의 에이스 대결은 이날 승부의 백미였다. 다섯 차례의 듀스. 손에 땀을 쥐는 대결. 승자는 박철우였다. 세 차례 연속 후위공격을 성공시키며 포효했다.

그러나 가빈은 기가 죽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4-8로 뒤지며 자칫 분위기를 넘겨줄 수 있었던 3세트. 가빈이 호쾌한 후위공격을 성공시켰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쉼 없이 때리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화력에 당황했다. 가빈의 3세트 공격 성공률은 56.52%로 1, 2세트(이상 42%)보다 오히려 높았다.

5세트에서 그는 더욱 힘을 냈다. 가빈은 “이기기 위한 욕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통쾌한 백어택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14-11에서 올 시즌의 마지막을 그의 스파이크로 마무리 지었다. 가빈은 유니폼을 벗어던지며 선수들과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눴다.

◆배구 입문 6년차, 삼성화재의 보물 되다=개막 전만 해도 삼성화재는 우승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신치용 감독은 “플레이오프에나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주축 선수들이 노쇠한 데다 지난 시즌까지 최고 활약을 펼친 안젤코(크로아티아)가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빈은 안젤코의 자리를 채우고도 남았다. 농구선수였다가 배구에 입문한 지 6년밖에 안 된 가빈은 세터 최태웅(34)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시즌 내내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을 해결하는 무서운 파괴력을 뽐냈다. 그는 “삼성화재에 와서 매일 배구를 새로 배웠다. 내년 시즌에도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한국에 남고 싶다”고 밝혔다.

대전=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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