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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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장 붉은 갑옷

도쿠가와는 우선 멸망한 다케다의 두 가신들을 받아들여 모두 자신의 인재들로 재등용하였다.

또한 천하의 무적군단이라고 알려졌던 붉은 갑옷을 입은, 다케다 군단에서도 가장 용맹하였던 '아카조네(赤備)' 를 계승하여 도쿠가와 군사 중에서 가장 용맹하였던 이이(井伊), 도도(藤堂)의 선봉대에게도 똑같이 붉은 갑옷을 착용하게 하였던 것이다.

즉 다케다 신겐이 입고 다니던 붉은 갑옷-다케다의 씨신이었던 신라사부로로부터 5백년동안 전해져 내려오던 붉은 갑옷을 찾는 대신 붉은 갑옷이 의미하는 정신을 도쿠가와는 승계하였던 것이었다.

이 붉은 갑옷을 입은 아카조네 군단은 도쿠가와 막부(幕府)가 와해되는 19세기까지 도쿠가와군의 정병(精兵)이었으며, 또한 다케다의 가신이었던 오바타(小幡)를 받아들여서 다케다 군단의 병법인 '고우영운칸(甲陽軍鑑)' 이란 병서를 저술케 함으로써 일본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병법서가 됐던 것이다.

도쿠가와는 이처럼 다케다의 군사적 능력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다케다의 기술적 능력 또한 그대로 계승함으로써 다케다 가문의 유산을 그대로 발전시켜나갔던 것이다.

즉 가이 출신의 광산기술자였던 오쿠보 나가야스(大久保長安)를 발탁, 일본 최대 금광 사도(佐渡)를 개발하여 결국 도쿠가와 막부의 경제적 기반을 확립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새가 울지 않으면 새를 죽여 버린다' 는 오다의 철학보다 '새가 울지 않으면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는 도쿠가와의 현실적 철학이 다케다 가문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어기순무' 는 역사상의 수수께끼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오다도 죽고, 도쿠가와도 죽고, 그 후 4백여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풍림화산' 의 깃발과 그 전설적인 '붉은 갑옷' 에 미련을 갖고 찾고 싶어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호사가들은 오늘도 후지산 일대의 원시림과 그 숲 속에 숨어있는 동굴들을 뒤지며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다케다 가문의 그 엄청난 보물들과 '어기순무' 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최근 어느날.

야마나시(山梨)현에 있는 운봉사(雲峰寺)라는 절에서 뜻밖에도 우연히 깃발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깃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자가 씌어져 있었다.

"바람같이 달리고 숲처럼 서서히, 침략은 불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하라(疾如風徐如林侵 掠如火不動如山). "

이 낡은 깃발은 그 즉시 사계의 전문가들에게 보여졌다. 전문가들은 낡은 깃발과 그 깃발에 쓰여져 있는 14자의 문구를 본 순간 바로 이 깃발이 전설적인 다케다 신겐의 무적 기마군단이 들고 다니던 그 '풍림화산' 의 깃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깃발은 현재 운봉산(雲峰山)에 있는 운봉사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 그 붉은 갑옷은 어디로 갔는가. 이 세상에 그 어떤 창이나 화살도 뚫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서 '다테나시(盾無)' 라고 불렸던 '붉은 갑옷' . 그 전설적인 붉은 갑옷 또한 어딘가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그 붉은 갑옷을 입었던 '신라 사부로(新羅三郞)' , 일본 역사상 가장 용맹하였고 무사다웠던 다케다 가문의 시조인 미나모토 요시미쓰(源義光). 그는 어째서 자신의 성과 이름을 신라(新羅)로 바꾸었던 것인가.

'신라' 라는 이름은 고구려, 백제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 속에 나오는 고대국가의 이름이 아닐 것인가.

자신의 성과 이름을 신라사부로로 바꾸는 과정에는 전설적인 붉은 갑옷보다 더욱 신기하고, 더욱 신화적인 어떤 역사적인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 아닐 것인가.

그렇다.

해신(海神). 한국이 낳은 바다의 신, 장보고. 장보고를 향한 역사적 추적은 이처럼 신라사부로의 비밀을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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