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통령 내년 총선 · 민정이양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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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파키스탄 군정 최고지도자인 페르베즈 무샤라프(사진) 대통령이 14일 처음으로 구체적인 선거 일정을 밝히며 집권 당시에 했던 민정이양 약속을 공식 재확인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인 이날 TV 연설에서 "2002년 10월 1~11일 총선과 지방선거를 실시할 것이며 이를 위해 선거위원회를 전면 개편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할 것" 이라고 밝혔다.

무샤라프는 내년 11월 의회 개원을 목표로 올 9월 준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를 국민에게 돌려줄 것" 이라며 "개헌에는 지금까지 참정권을 박탈당했던 여자와 빈자.농부들에게 다시 선거권을 주는 내용도 포함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 개헌의 배경=국민의 민주적 권리 확대와 보장을 개헌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분석가들은 사실상 이번 개헌은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사전 포석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권이 총리에게 있는 현 정치체제를 대통령에게 권한을 대폭 넘기는 쪽으로 개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형식만 문민통치일 뿐 사실상 군부가 감독하는 새로운 정치체계를 만들어 공약준수와 정권유지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속셈이다.

무샤라프는 민정이양 선언에 앞서 지난 6월 20일 임기가 18개월 남은 라피크 타라르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9년 10월 무혈 쿠데타로 의회기능을 정지시킨 후 나와즈 샤리프 당시 총리를 해임해 총리직이 공석인 상태에서 총리직이 아니라 대통령직에 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정치분석가들은 일찍부터 대통령 권한강화로의 개헌을 점쳐왔다.

◇ 파키스탄 정치제도=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의 절충식이다. 원래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으나 97년 13차 개헌 당시 대통령의 의회해산권을 폐지한 이래 총리가 행정수반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무샤라프가 이번에 개헌을 하면 다시 대통령이 총리보다 우위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내년 선거에서 어떤 정파가 총리직을 차지하든 무샤라프는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 개헌의 근거=파키스탄 대법원은 지난해 무샤라프가 집권 직후 공약한 대로 2002년 10월까지 총선을 실시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동시에 무샤라프에게 헌법을 고칠 수 있는 무제한의 권한을 줌으로써 무샤라프가 2002년 이후에도 계속 통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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