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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은 왜 디자인-마케팅 따로 일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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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지방은행인 엄콰(Umpqua)는 최근 다른 은행들이 구조조정하는 것과는 달리 직원수를 오히려 늘리고 있다. 2000년에 160명에 그쳤던 이 은행의 현 임직원 수는 1000여명이다. 은행의 이미지를 통째로 바꾸자 고객이 줄을 이었고 일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친절하고 따뜻한 은행 이미지를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디자인과 서비스를 한꺼번에 수술했다.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느끼도록 회사 로고를 초록색 나무 모양으로 만들었다. 미국 내에서 대표적인 산림지역으로 꼽히는 오리건주의 특징을 살린 것이다. 은행창구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뜯어고쳤다. 고객과 거리를 뒀던 유리벽을 걷어내고 고객들이 은행점포에서 인터넷을 즐기고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사는 또 전직원을 리츠칼튼호텔 서비스스쿨에 보냈다. 거기서 고객의 눈에 맞춘 서비스기법을 배우게 했다. 그 결과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창구는 하루종일 고객의 발길로 붐볐다.

얼 파월(64.사진) 미국 디자인경영연구소(DMI) 소장은 엄콰 은행의 성공사례를 이같이 소개하며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려면 ▶CI(기업이미지 통합 작업) ▶인테리어 디자인 ▶서비스개선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브랜드 경영을 중시하면서 처음엔 디자인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충고를 했다. 파월 소장은 산업정책연구원 주최로 12일까지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리는 '국제 브랜드 콘퍼런스'에서 브랜드전략 발표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세계 MP3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애플사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또 다른 성공 사례로 들었다. 파월 소장은 "애플의 디자인팀은 기술연구진과 함께 소비자들의 취향을 먼저 조사해 제품의 전략을 세웠다"며 "아이팟이 MP3 플레이어 디자인 개념을 깬 것도 이 같은 공조체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아이팟은 종전의 MP3 디자인과는 달리 가방이나 옷에 달고 다니는 액세서리 모양의 디자인을 해 소비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파월 소장은 "최근 미국 기업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매출 증대보다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일"이라며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만족감을 높이는 데는 디자인의 힘이 크다"고 설명했다.

파월 소장은 국내 기업의 디자인 경영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단언했다. 그는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이 현대차.삼성전자.CJ.포스코 등 국내 기업 30여개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파월 소장은 "조사 대상 한국 기업 대부분이 디자인과 마케팅팀의 협력기반이 없는데 놀랐다"며 "회사 차원에서 디자인과 브랜드 전략을 함께 세우지 않는다면 한국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를 올리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월 소장이 이끄는 DMI는 세계 유일의 디자인 경영 연구소로 1975년 설립됐다. 필립스.이스트먼 코닥.모토로라 등 글로벌 기업의 간부와 전 세계 디자인, 경영 교수 45명이 이 연구소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파월 소장은 보스턴 대학과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교수를 거쳐 85년 DMI 소장에 올랐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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