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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꿈] 5. 쿠바의 새로운 선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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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새벽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우리 집 베란다 밖으로 난데없이 귀에 익은 피아노곡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좀 놀랐다.

그것은 쿠바의 뮤지션들이 출현하는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에서 백발의 피아니스트 루벤 곤살레스가 연주하던 멋들어진 재즈곡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낑낑거리며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는 건 기특하게도 고3짜리 까까머리 아들 녀석이었다. 그리고 이 놀라움은 머지않아 아바나의 뒷골목으로 이어진다.

헤밍웨이의 단골 레스토랑이었던 '엘 플로리디타' 를 나온 직후, 길모퉁이를 도는데 돌연 귀에 익은 소란스러운 생음악이 솟아올랐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에서 일흔 넘은 노장 이브라임이 낭랑한 목청으로 열창하던 노래, 진원지는 노천 카페였다.

손북과 기타를 두드리며 신을 내고 있던 젊은 친구들은 아우성을 지르며 우리를 맞았다. 보다 해학적이고 신나는 '툴라네 침실에 불났네' 를 청하니 카페는 이내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복작거리는 그 골목거리에서 까무잡잡한 친구들이 연주해 주는 신나는 생음악을 듣다니, 참 신통스러운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한국에도 잠깐 왔다 간 재즈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 말고도 쿠바에는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게 된 쿠바의 대중음악은 저 멀리 그들 조상의 대륙인 아프리카의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선율과 맞닿아 있다.

구(舊) 아바나의 뒷골목을 지나칠 때면 껌껌한 집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쿵쾅거리며 울려나는 음악소리에 자칫 의아심을 품게 될는지도 모른다. 택시.카페.길거리 어디서나 음악소리는 넘쳐난다. 재즈에 익숙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인데도 그들에게 그 소란스러운 음악은 일상의 빵이나 담배 같은 것인 모양이다.

쿠바의 주력 생산품은 술.시가.커피.사탕수수 등이지만, 그것 말고 대외적으로 쿠바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는 것이 또 있다. 공항 면세점이나 각 지방 명소의 기념품점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건데 상품에 새겨진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의 얼굴이다.

노 벨문학상 수상작가와 쿠바혁명의 영웅, 두 거장이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공교롭다. 쿠바를 사랑했으며 피델 카스트로와도 친하게 지냈던 헤밍웨이가 그런 식으로 대접받는 건 이해함직하지만 체 게바라의 경우엔 느낌이 착잡해진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룩해낸 혁명이 예사로운 게 아니었던 때문인데, 하기야 딴 나라 사람들이 그 두 인물을 상품화해서 선수를 쳤으니 요즘처럼 빨리 돌아가는 세월에 쿠바 사람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으랴.

헤밍웨이 만년의 걸작 소설 『노인과 바다』의 작품 무대였던 코히마르 해변이나 그의 단골처 '라 보데기타' '엘 플로리디타' 와 아바나 교외의 헤밍웨이 별장은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다. 카요 라르고 섬을 비롯한 카나리아군도의 해변과 청년섬, 아바나 해변 같은 명소에는 앞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정작 우리가 노고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장소는 관광객들이 돈푼이나 좀 뿌리면서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는 그런 데가 아닐 것이다. 이 나라의 한 맺힌 현대사의 리얼리즘을 발바닥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지 않을까 싶다.

바티스타 정부군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수효의 유격대원이 혈로를 뚫고 나간 혁명전쟁의 주무대. 마에스트라 산맥, 카마구에이의 험준한 봉우리, 가파른 협곡, 질척거리는 늪지를 답사해야 비로소 이 나라 역사의 숨겨진 면목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들어 약소국가들에 희망을 불어넣어 준 이념 가운데서 범세계적인 위력을 발휘한 것이 마르크시즘일 것이다. 우리네가 피침략의 경험을 많이 가진 약소민족이라 그런지, 반정부.반외세.반미.반제국주의 등등 저항적인 이데올로기를 국기(國基)로 삼은 나라들에는 애처로워하는 눈길을 몇 곱절로 더 보내지 않을 수 없던 이번 여름.

그래서 뒤늦게 접하게 된 『체 게바라 평전』으로 하여 무의미와 폭염의 지리멸렬함에서 쉽사리 탈출하게 된 나였다.

쿠바에 대해 우리가 매우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 첫째가 이 나라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에 관해서일 것이다. 강성의 이미지를 가진 독재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그건 혁명이나 마르크시즘에 대해 본능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가 버릇된 우리네 언론, 그리고 바다 건너 강대국이 차지해 앉은 저 망루에서의 싸늘한 눈길 때문일 것이다.

체 게바라가 친형님 이상으로 좋아하고 존경한 피델 카스트로. 카스트로와 함께 내전을 승리로 끝맺고 나서 새로운 혁명의 전진기지 콩고.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게바라가 카스트로에게 보낸 편지에는 두 사람의 인간관계뿐 아니라 카스트로의 인간됨됨이를 향해 바치는 외경심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쿠바혁명의 실전론(實戰論)은 당시의 쿠바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선이었고 그들의 궁극 지향점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애였음을 평전이 잘 보여준다.

"… 당신의 곁에 머물면서 나는 찬란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저 빛나는 시간들을 우리 민중과 함께 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낍니다.

아울러 망설임없이 당신을 따랐고 당신의 사고방식을 기꺼이 따랐다는 점 역시 자랑스럽습니다. …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내 마음은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그리고 특히 당신을 향할 것입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모범에 대해 감사하며 내 행동의 결과에 늘 확신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한 편 카스트로가 게바라를 또한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했던가도 게바라 사후 카스트로가 그에 대해 언급한 연설문에 잘 드러나 있다.

"… 그는 무척이나 대담한 사람이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가장 어렵고 위험한 순간에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해내곤 했다. 그는 순결하고, 모든 것에 초연하고 욕심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간이었다. 게바라의 삶은 그를 맹렬히 반대하는 이념상의 적까지도 감명을 받고 찬사를 바칠 정도로 위대했다. 그의 죽음은 이 시대의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

'우리가 원하는 건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중이 다 잘 먹고 공평하게 살며 착취당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라는 카스트로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지금의 내겐, '이데올로기는 변수(變數)이나 인간은 영원한 상수(常數)' 라고 썼던 내 두 번째 장편의 작품 후기(後記)가 착잡하게 겹쳐져 떠오른다.

그들은 조만간 자신들을 하나로 굳건히 통합시켰던 이데올로기와 작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이념이 급히 쇠락하게 된 요즘, 카스트로와 그의 동지들은 아마도 이 문제를 가장 깊이 생각해 왔으리라.

급변하는 변화의 한가운데서, 혁명의 이념으로 국민들을 다 먹여살리지 못하게 되었다면 새로이 분출될 국민들의 새로운 욕망들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면서 그들을 이끌어나가야 할지가 내게는 참으로 궁금하다.

박영한 (소설가.동의대 한국어문학부)

사진〓황지우(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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