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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지금 미·일·중·러 '007 무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울을 무대로 한 각국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수집전이 열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불붙기 시작한 이런 움직임은 최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서울 답방(答訪)동향 등을 둘러싸고 더욱 고조되고 있다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이런 환경에서 국가정보원 간부의 대북정보 유출 파문은 언제든 재연될 우려가 있어 정부와 정보기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집요한 CIA=대북 정보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쪽은 미 중앙정보국(CIA)이다.

서울 세종로 미국대사관 5층에 위치한 지역문제조사연구소(ORS)가 서울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 부임한 존 사노(51)거점장을 필두로 정치.경제와 군사.안보 두 파트로 나뉘어 50명 가까운 요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미사일 관련 동향 등을 수집하기 위해 동아시아 담당 흑색요원이 워싱턴에서 10여명이 증파되는 등 거점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안다" 고 귀띔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북한의 금강산 관광 대가의 군사비 전용(轉用) 여부 등 민감한 정보에 대해 협조해줄 것을 국정원측에 요구해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CIA측이 최근 방미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껄끄러운 상태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직접면담을 줄곧 요구하고 있는 점도 우리측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U2R고공정찰기나 KH-11사진첩보위성 등을 통해 수집한 기술정보(Techint)를 보완.확인하기 위해선 인적정보(Humint)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총리실 산하 내각조사실이나 중국의 국가안전부, 러시아의 해외정보국(SVR)도 서울주재 대사관을 통한 대북정보 수집을 위해 인적.물적 투자를 부쩍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대책 없나=서울이 주변 4강국 정보기관의 각축장으로 바뀐 상황에 맞춰 우리의 방첩환경이나 법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정보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북한에만 초점을 맞춘 간첩죄 등으로는 외국 정보기관의 집요하고 지능적인 침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결국 우리 요원만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다" 고 말했다.

이번 국정원의 기밀누설 사건과 관련, '정보유출은 없었지만 연관된 우리 요원을 파면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식의 수습방안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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