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쇼트트랙 담합 조사, 정부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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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꼭 4년 전인 2006년 4월. 대한빙상경기연맹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렸다. 세계쇼트트랙선수권에서 안현수와 이호석이 충돌한 사건으로 불거진 ‘파벌 싸움’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외부 인사인 채환국 동국대 교수가 조사위원장을 맡았지만 ‘협조 부족’으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의 충돌은 아니었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빙상연맹이 취한 조치는 ‘(빙상연맹 관계자를 폭행한) 안현수 아버지에 대해 1년간 연맹 주최 대회 출입금지’가 전부였다.

2010년 4월 14일. 대한빙상경기연맹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시작됐다. 세계쇼트트랙선수권에서 이정수에 대한 불출전 외압이 있었다는 것과 지난해 대표 선발전에서 선수·코치 간 담합이 있었다는 대한체육회 감사 결과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5명으로 이뤄진 조사위에는 김용 체육회 감사실장, 정준희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그리고 오영중 변호사도 포함했다.

그러나 이정수는 13일, 빙상연맹 조사위의 조사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부 인사를 영입했지만 김철수 빙상연맹 감사가 위원장, 이치상 연맹 사무국장이 간사를 맡은 조사위에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불신이다. 조사위 구성원에 대한 중립성 논란이 일자 김철수 위원장이 14일 사퇴했지만 여전히 자체 조사로는 해결이 힘들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달 초 대한체육회 감사 당시에도 선수들은 4월 23일로 예정된 대표 선발전(9월로 연기)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민감하다.

더구나 빙상연맹은 이번 조사위를 구성하면서 “조사 결과 문제가 드러난 해당 선수와 코치를 상벌위원회에 넘기겠다” “최고 제명까지 할 수 있다” “연금을 받는 선수들은 연금 지급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협박이다. 4년 전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빙상연맹이 또 몇몇 선수와 코치를 희생양으로 삼아 유야무야 넘어가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체육회 감사에서 드러난 대표 선발전 담합에 대해 이정수는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또 다른 당사자인 곽윤기는 “내가 이정수를 도와줬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라. 이번 사건을 조사하라고 체육회에 지시한 것도 문화부다. 당사자인 빙상연맹을 배제하고 문화부가 직접 조사하든지 감사원에서 맡아야 한다. 이런 일에까지 정부가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다. 그러나 한 번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손장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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