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사범 사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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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15 광복절을 맞아 민주당이 시국사건 관련자에 대한 특별사면.복권과 수배해제를 청와대 등에 건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밝힌 사면 대상자 4백48명 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자 48명.집시법 위반자 1백10명.선거법 위반자 96명이 포함돼 있고 수배해제 대상은 학생 1백48명, 노동운동 관련자 66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면.복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법제화돼 있지만 사법권 침해로 법치를 훼손하는 등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가능하면 자제해야 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나라는 군사 쿠데타 등 정치변혁이 잦아지면서 정통성 없는 집권세력이 민심을 얻는 방법으로 이를 이용해 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다섯차례나 특별사면이 시행되는 등 무슨 연례행사처럼 돼 버렸으니 이는 하루빨리 고쳐야 할 부분이다.

특히 사면 대상자에 선거법 위반 사범 96명이 포함된 것은 재고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정치풍토 개선을 위한 선거사범 엄단은 국민적 합의사항이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경쟁적으로 이를 강조하고 약속했지만 처벌은 매번 솜방망이에 그쳐 오히려 '당선만 되면 그만' 이라는 풍조를 부추긴 감도 없지 않다.

사면 대상은 1998년 지방선거 과정에서 출마자격이 정지된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선거 후보자들과 정치인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범죄사실이 경미하므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자격을 회복시켜 주자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솜방망이 처벌 풍토에서 자격정지에 해당하는 '중형' 을 받았다면 나름대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선거사범 대부분이 법원.검찰에서 가볍게 처리되는 마당에 자격을 잃은 사람마저 정치권이 구제해 주는 것은 국민 법감정에 역행하는 일이 아닌가.

현 시점에서 사면.복권이 필요한가도 의문이지만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선거사범이나 정치인들을 포함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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