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와히드만 몰랐던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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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든 권력은 정당한가. 압두라만 와히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의 집권으로 매듭된 인도네시아의 최근 정치상황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수하르토의 32년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1998년 5월의 민주화운동 덕택에 이슬람 지도자 와히드는 99년 10월 예상을 뒤엎고 국민협의회(MPR)의 간접선거에서 세계 4위 인구 대국의 책임자가 됐다.

당시 순리대로라면 그해 6월의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메가와티가 집권해야 했지만 제4당 당수이던 와히드는 이슬람 정파간의 제휴로 어부지리를 얻었다. 아무튼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이후 21개월간 와히드는 정통성을 내세워 민의의 대변자인 국회(DPR)를 철저히 무시했다. 주요 각료와 군.경 고위직 인사는 정실에 치우쳤다. 경제개혁은 지지부진했고 종족 분규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와히드는 국정운영을 메가외티에게 넘기고 2선으로 물러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의회의 탄핵압력을 비켜갔다. 하지만 그는 곧 약속를 저버리고 독선.독단적인 행태를 되풀이했다.

올 1월 자신의 금융스캔들 연루의혹을 캐려한 국회 진상조사청문회에 출석했던 와히드는 바쁘다는 이유로 답변도 하지 않고 일찍 자리를 떠나버려 국회를 모욕했다. 지난 5개월 동안 계속된 DPR의 해명 요구에도 와히드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무죄만 강변했다.

7월 들어 탄핵이 임박하자 와히드는 고립무원에 빠졌다. 그의 비상사태 선포령과 경찰청장 해임 명령을 누구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헌법에도 없는 의회 해산령이라는 무리수를 두다가 와히드는 탄핵의 부메랑을 맞고 말았다. 탄핵 결정 후에도 와히드는 메르데카궁에 머물며 자신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첫 대통령' 이란 사실을 부질없이 되뇌었다.

신병치료를 구실로 26일 미국으로 떠나면서 와히드는 "조만간 귀국해 반정부 운동을 이끌겠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한차례 혹독하게 당한 인도네시아 국민이 그에게 또다시 기회를 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선출된 권력자라도 오만하지 않고 민의를 겸허하게 받들 때만 통치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와히드만 몰랐던 것일까.

장세정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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