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자연은 치열한 전쟁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송이버섯과 광대버섯은 모두 천연버섯이지만, 광대버섯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광대버섯에 들어 있는 무스카린이 신경전달 물질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알광대버섯도 인체의 세포를 파괴하는 팔로이딘을 가진 독버섯이다. 자연을 포근한 안식처로 여기고 싶어하는 자연예찬론자들에게 이처럼 독을 가진 천연물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존재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화학물질을 이용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간다. 몸을 만들고, 에너지를 얻고, 귀중한 유전정보를 물려주는 모든 일이 화학물질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생명체를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화학공장이라고 하고, 그런 화학작용을 이해하는 일이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핵심이 된다.

인체의 화학공장도 여느 공장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원료를 쓰거나 원료의 배합이 잘못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적은 양도 인체에 치명적인 '독' 은 물론이고, 무해하다는 물이나 소금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자연에 왜 그런 무서운 독이 존재할까□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생물은 맹독성 화학무기를 만들어 쓴다. 독사는 독액으로 먹이를 잡고, 해바라기는 제초제 성분을 뿌린다. 물론 인간도 그런 무기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에서 이런 무자비함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부러 화학무기를 쓰지 않는 생물도 그냥 먹으면 인간에게 해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서 설계된 화학공장의 기계 장치와 원료와 폐기물 중에 인체에 독이 되는 성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인체에 해로운 성분을 모두 가려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천연식품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실제로 시금치.당근.겨자.마늘.버섯처럼 몸에 좋다는 천연식품에도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독이 들어 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독성이 강한 생물을 가려내거나, 요리 과정에서 독을 제거하는 지혜를 터득하기도 했다. 독버섯을 구별하는 능력과 감자의 일종인 카사바에서 맹독성의 사이아나이드 화합물을 제거하는 요리법이 그런 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생명체는 안전하게 독을 처리하는 화학장치를 몸 속에 갖추고 있다. 우리 몸의 간이 바로 그런 장치이고, 송이버섯을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것도 바로 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간이 만능은 아니어서, 무스카린이나 팔로이딘처럼 낯선 독성물질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먹이로 쓸 수 있는 생물에게 생존과 번식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인간에 대한 독성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남다른 호신책을 마련했다. 인공적인 교배를 통해 품종을 개량하는 육종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잉카인들이 육종을 이용해 맹독성 화학무기를 쓰던 감자를 무장해제 시킴으로써 인류의 식량 확보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능력을 잃어버린 감자는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불구가 돼 버렸다.

천연물은 모두가 인체에 이롭다고 믿는 것은 여유를 갖게 된 인간의 순진한 착각이다. 자연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생물들의 치열한 전쟁터다. 그런 전쟁터에서 무조건적인 박애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연에 진정한 평화의 깃발을 세울 수 있는 길은 과학적 지혜를 가진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

李 悳 煥 <서강대 교수.이론화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