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미국 접촉 꿩 대신 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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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는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포럼에 북한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거의 확실시되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白외무상간의 북.미 외무장관회담이 무산됐다.

성사된다면 이 회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북.미 고위급 접촉이 될 뻔했다.

처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수준도 외상급이어서 이 회동이 꽉 막혀 있는 북.미 대화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비록 白외무상은 아니지만 차관보급인 허종 유엔순회대사 또는 차관급인 이용호 참사가 참석할 전망이어서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와의 회동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최근 회의가 열리는 베트남측에 "대표단은 3명이며 차관급이 이끌 것" 이라고 통보해 한국과 미국의 외교당국은 차관급인 이용호 참사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19일부터 허종 대사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許대사는 북한 유엔대표부의 차석대사를 지내면서 오랫동안 북.미간 뉴욕 실무접촉의 북한 채널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유엔 근무를 마치고 평양본부에 들어갔다가 최근에는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북한대표를 지냈다.

李참사는 강석주(姜錫柱) 제1부상 밑에 10명 정도 있는 북한 외무성 부상들과 급이 비슷한 인물이다.

李참사는 지난 5월 지역포럼 준비회의 때 최영진 한국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장의 주선으로 켈리 차관보를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협의가 아닌 상견례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 사이에선 백남순 외무상의 불참을 북한의 고전적인 밀고당기기 전술로 보는 견해가 많다.

미국이 핵.미사일.재래식 전력이라는 3대 의제를 일방적으로 선정했다고 공격하고 있는 북한이 파월-백남순 회동도 미국측에서 '일방적으로' 전망하는 것에 대해 "당신들 마음대로 되는가 봐라" 는 식의 기세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북.미, 남북대화와 관련해 '하노이의 백남순' 에게 세계의 시선이 쏠리는 상황에서 미처 대미 대화 결심이 서지 않은 북한이 상당한 부담감을 느껴 몸을 빼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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