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이야기꾼 - 무협 2.0 ⑤ 『절대천왕』 작가 장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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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무협’으로 창작무협 ‘신 4대천왕’의 한 자리를 차지한 장담 작가. [김경빈 기자]

천하의 주인 자리를 노리는 오패(五覇) 중 하나인 제천신궁의 군사 좌승유가 어느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궁주 혁련무천에게 신월맹을 공격해 흡수하자는 전략을 제안해서다. 궁주와 처남매부 사이인 신월맹을 공격하자는 안을 내놓자 궁주는 ‘배덕한 제안’을 한 죄를 물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궁의 핵심 무사 수백 명을 잃게 한 실수를 저질러 근신처분을 받았던 터였으니 죄가 가중된 것이다. 혁련 궁주의 ‘정의로운 조치’에 마음을 놓은 신월맹은 그러나, 죽었다던 무사들의 급습으로 초토화된다.

작가 장담(48· 본명 성인규)이 2008년 발표한 『절대천왕』은 이처럼 무협소설에선 보기 드문 ‘사석(捨石)작전(더 큰 이익을 위해 내 돌을 죽이는 바둑용어)’ 이야기로 시작된다.

“개인의 복수를 뼈대로 한 무협소설도 좋지만 세력과 세력 간의 ‘전략’을 다루고 싶었어요.”

그래서일까 이 소설엔 적의 전략을 알아채 역이용하는 장계취계(將計就計), 적의 분열을 꾀하는 반간계(反間計) 등 다양한 전술전략이 등장한다. 모두 좌 군사의 아들 좌소천이 무공을 닦고 세력을 모아 선친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며 제천신궁과 천외천가를 꺾고 천하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과정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수담옥의 『사라전종횡기』와 더불어 창작무협의 대표적인 ‘밀리터리 물’로 꼽는다. 또 특유의 색깔 덕에 그는 창작무협의 ‘신 4대천왕’ 자리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바둑이 아마 4단 정도거든요. 장고파에, 포석이 강하고요. 무력 대결 위주의 단순한 개인의 복수물보다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게 그 영향이지 싶어요.”

특이한 것은 그뿐 아니다. 그의 전공은 기계공학. 대단한 외도인 셈이다. 게다가 2004년 인터넷 무협사이트 ‘고무림’에 『고영전』 연재를 시작해 2005년 출간했으니 늦깎이 작가다. 그러고도 3년 여 이중생활을 했다. 전주 토박이로 지방기업에 멀쩡하게 근무하면서 퇴근 후엔 글을 썼다.

“매일 4시간 정도만 자니 몸이 배겨나지 못 하더라고요. 아예 이 길로 나서자 싶어 2008년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죠.”

변신 후 처음 낸 작품이 바로 『절대천왕』으로 반응도 좋았지만, 스승 격인 한국대중문학작회의 금강 회장에 따르면 “작가로서 꽃피운 전기”가 됐다. ‘전략’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무협 특유의 무공 대결도 소홀하지 않았고 안타까운 사랑까지 녹여낸 덕분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많은 것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싸움보다 요즘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의리와 정을 그리자고 마음 먹었죠.”

그가 생각하는 의(義)와 협(俠)을 물었다. “의는 사람이 행해야 할 올바른 도리를 뜻하고, 협이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 아닐까요.” 반듯하나 재미없는 교과서 같은 대답이다. 터무니 없이 강력하거나 천둥벌거숭이 같은 주인공을 내세운 ‘먼치킨 무협’이 판을 치는 마당에 그런 작품이 읽힐까 싶다.

“제 소설의 독자는 30대 이후가 많아요. 무협독자치고는 비교적 나이든 축이죠. 하지만 책을 통해 순간적 재미 외에 뭔가 생각할 거리를 주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상관없어요.”

시원시원하다.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고집도 엿보인다.

“회사를 그만 두고 글만 쓰겠다 했을 때도 아내가 믿어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스트레스가 없어요.”

그러니 그는 행복한 글쟁이다. 가끔 엉뚱한 짓을 벌이는 막내 아들이 무협작가를 지망해도 말릴 생각이 없을 정도로. 꿈에서도 무협 스토리를 만날 정도로.

글=김성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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