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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때늦은 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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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사회부 기자

"울산에 본사까지 둔 업체가 설마 타지역으로 옮기랴 싶었어요."

현대중공업이 최근 포항에 선박 블록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자 울산시 공무원들은 "기업의 생리를 너무 몰랐다"며 후회했다.

올해 초 이 회사가 공장 부지난을 호소했을 때 울산시는 온산공단 해안 쪽을 제시하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해당 지역은 이미 다른 업체의 공장용지로 지정돼 있어 평당 30만~40만원을 줘도 넘겨받기 어려운 곳이었다. 현대중공업 측이 수지를 맞출 수 없다며 인근의 공단 녹지를 깎고 해안을 매립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자연녹지여서 곤란하다고 손을 내저었다.

현대중공업이 공장 설립 부지가 없어 끙끙 앓고 있을 때 포항시는 시장.시민은 물론 환경단체까지 이 회사에 손짓을 했다. 평당 26만원도 채 안 되는 땅을 시에서 책임지고 매입해 주는 것은 물론 도로.상하수도 등 기반시설까지 시 부담으로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공장 신설이 절박한 기업으로서는 포항시의 이 같은 제의에 귀가 확 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업도시인 울산에 있던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은 이 회사뿐 아니다. 현대하이스코는 환경단체.주민의 반발을 못 이겨 냉연공장 건설을 포기하고 지난달 당진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현대미포조선은 9년째 놀고 있던 공장 앞 빈터 3만평을 임대하려다 반발하는 주민들 때문에 지난 7월 목포에 선박 블록공장을 신설했다.

울산대 김재홍(행정학)교수는 "울산시가 기업체에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실망할 일이 한 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유치는 결국 중앙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번 사례들이 말해 준다고 했다.

"뒤늦었지만 장생포 해양공원 부지도 공장 용지로 내놨고, 현대중공업이 원했던 곳(온산읍 우봉리) 인근에 공단 추가 조성도 추진 중입니다. 2010년 완공만 되면 날씨 등 여건이 워낙 좋아 나갔던 기업들이 다 돌아올 겁니다." 울산시 간부의 말이다. 그동안 다른 도시는 손 놓고 있을까.

이기원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