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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동포 자녀들 당당한 한국인으로 길러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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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린 시절엔 러시아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푸대접받는 게 참 서러웠습니다. 지금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우리 아이들을 당당한 한국인으로 가르치는 게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9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4회 '비추미여성대상'(삼성생명공익재단 주최.여성부 후원)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엄 넬리(64) 러시아 모스크바 1086한민족학교 교장.

그는 1992년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 내 유일한 한인학교인 1086한민족학교를 세워 동포 자녀교육에 헌신해온 공로로 상을 받았다.

"한민족학교를 세운다고 하니 처음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어요.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당시 항의 시위에 참가했던 러시아 할머니가 자기 손자를 입학시켜달라고 부탁한답니다."

현재 한민족학교(초.중.고등 과정 포함) 학생의 60%만 한인 동포 자녀이며, 나머지는 러시아(35%)와 기타 소수민족이다. 엄 교장의 열성적인 경영에 힘입어 이 학교가 모스크바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으로 자리잡은 데다, 취업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타 민족 학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52세에 독학으로 한국어를 깨쳤다는 엄 교장은 "학생들이 종종 나더러 '교장선생님은 한국말 실력이 좋은데 왜 다른 곳에 취직하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한국어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이주 4세대 한인인 엄 교장은 모스크바 사범대를 졸업한 뒤 65년부터 교육계에 몸담아 왔고, 한국인 유학생 사이에선 '대모'로 통한다. "러시아로 유학온 돈 없는 한국 유학생들이 라면만 먹고 지내는 게 안쓰러워 해마다 김장을 2t 정도 담가 밥과 김치를 먹였다"는 그는 "이인영 국회의원, 김성국 변호사 등 90년대 유학왔던 이들은 지금도 나를 '어머니'라 부른다"며 웃었다.

엄 교장은 "학교에 한국 출신 선생님이 한분밖에 없어 아무래도 회화교육이 달리는 게 아쉽다"며 이번 귀국길에 어학 시청각 교재를 한아름 안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선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가 해리상, 임영숙 서울신문 주필이 달리상,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별리상을 각각 받았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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