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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한 라틴아메리카의 꿈] 2. 쿠바 아바나의 뒷골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카리브해의 흑진주' 라 불린다는 미항(美港) 아바나, 도시 깊이 밀고 들어온 아바나만(灣)에는 대형 상선이 유유히 버티고 있고 바다 건너편에는 스페인 군대가 축조한 모로(Morro)요새가 도시의 미관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아바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올드 아바나로 불리는 구시가는 식민지 시절의 고전적인 건물들이 1500년대 초반 벨라스케스의 통치시절 이후 옛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올드 아바나 거리의 상점들이 장사가 시원찮고 길거리 정비가 소홀해 어수선한 분위기인 반면, 반듯반듯하게 구획을 지은 신시가지는 현대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임해(臨海)도로 말레콤 거리를 따라 일급 호텔과 신식 빌딩들이 들어서 있으며, 최근에는 고층 아파트.주택가.공단을 조성해 세계적인 추세인 개방시대와 일합(一合)을 겨룰 준비를 하는 중이란다.

10년 내전이 끝나 바티스타 정권이 쓰러진 1959년 혁명 전까지 국내 부자들과 외국인들이 차지해 살던 '바세오 거리' 라나 어디라나, 부자 동네가 대서양을 코앞에서 건너다보고 있다.

거기는 혁명 전까지 보통 인민들은 주거와 출입을 제한시켜 '금지된 구역' 이라 불렸다는데, 주택들은 그 옛날의 유족함을 겉으로만 내보인 채 속으로는 허전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창틀과 담장이 부실해진 주택들이 눈에 띈다.

혁명의 수장(首長)카스트로가 몰수해서 지금은 외국인 공관.합작회사.학교.공공주택 등으로 활용한다는데 백색의 소담스런 건물에 든 북한대사관도 그 잘난 구역의 찻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거리는 잘 단장되어 있고 고풍스런 그 어느 한 집도 같은 모양새나 같은 색깔이 아닌 점이 이채롭다.

이쯤에서 거두절미, 내게 인상적이었던 올드 아바나의 거리 풍경을 독자들께 보다 더 실감나게 전해드리기 위해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편지 한통을 공개할까 한다. 이름붙여 '카를로스에게 보내는 엽신' 이다.

카를로스, 자네를 만난 그 이튿날도 자네가 모는 시클로에 나를 태워 시내 구경을 시켜준다고 약속했지. 바로 그 이튿날 산타 클라라 수녀원 뒷골목의 그 콜라가게에서 자네와 나는 어김없이 만났지.

햇볕에 그을린 자네 목덜미의 검정 타르빛, 푸르스름한 흰자위 이글거리는 자네 눈빛의 선량함에 끌렸던 모양이야. 첫날과 달리 자네와 나는 보다 본격적으로 뒷골목 순례를 떠나기로 하고 구질구질한 데만 골라서 찾아 다녔지.

슈퍼마켓이란 것이 우리네로는 대개 연쇄점 규모였지. 보다 큰 국영상점도 없지는 않더군. 생활용품을 파는 별의별 가게들이 골목에 다 있었지. 야채와 풍성한 과일을 파는 리어카가 즐비한 골목을 우린 지나갔지.

희한하게도 통마늘이 보이더군. 빵가게가 제일 많더군. 빵을 내미는 손이나 그걸 얻어가는 손이나 한결같이 손들은 정갈치 못했어. 가전제품 코너의 빈약한 가전제품 너머로 우리네 '삼성전자' 로고가 크게 떠 있더군.

우리네 소형 자동차가 자주 눈에 띄었지. 큰길에선 차가 뜸했는데 막상 좁은 거리로 들어오니 자동차.사람.시클로가 혼을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이 나다녀댔지. 공산국가니까 경찰과 군대가 곳곳에서 감시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

카스트로의 초상화가 아무데도 안 보이는 게 신기했어. 북한보다야 훨씬 자유롭다는 느낌이었어. 자네들은 드러내놓고 불평하기도 한다지. "한때 우린 그를 철석같이 믿었지만 카스트로는 이젠 영 젬병이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 "

사유재산제도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으니 너희네 나라도 조만간 문제와 닥뜨리게 될 걸. 사유재산제도가 몰고 올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미국이 탐내던 땅 쿠바는 관광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천혜의 휴양지가 수두룩하고 관광수입만 가지고도 온 국민이 너끈히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 그리 되면 또다시 나라가 들썩거리지 않을까?

한편 자네 나라와 멕시코의 눈에 띄는 차이도 짚어보고 싶네. 피부 빛이 우선 다르더군. 멕시코가 홍백 혼혈인 메스티소가 80% 가까운데 너희네 나라엔 메스티소가 거의 안 보이더군.

흑백 혼혈 물라토가 대부분이었어. 벨라스케스의 통치 이후 원주민들은 깡그리 굶고 병들고 맞아서 죽었다지.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끌어다가 커피 사탕수수 농사를 지었는데, 물라토가 많은 건 그래서겠지?

참, 물라토 얘기 났으니 말인데, 아바나를 떠나기 전날트로피카나 극장에서 본 그 나이트쇼는 일품이었다네. 천상에서 환상의 밧줄을 타고 내려온 선녀들이 1백명은 더 넘었으리라. 아프리카와 스페인 음악이 혼합된 너희네 나라의 춤과 노래가 가히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밤이었지.

쿠바의 진면목을 화끈하게 보여주는 쇼였어. 미끈하게 빠진 물라토계 무희들의 천부적인 몸놀림이라니. 함께 갔던 일행은 그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거든. 세상에나!

공산국가에서 세계 3대 쇼 가운데 하나라는, 거의 벌거벗은 거나 다름없는 반나체 쇼를 공공연히 벌이다니. 엠 템플레테 정문 맞은편의 아담한 공원이 기억나네. 자네 나라 독립의 아버지로서 초대 대통령이었던 세스페데스 동상이 서 있던 자리 말이지.

헌 책 실은 수레들이 줄지어 서 있었댔지. 체 게바라와 호세 마르티가 남긴 책들이라던가. 게바라와 마르티와 카스트로의 동지들과 막심 고메스를 대선배로 모실 수 있는 자네 나라는 그래서 앞날이 유망창창하다고 말해주고 싶네.

오죽했으면 자네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일 때 도미니카 공화국의 장군 고메스가 달려와 말을 타고 진두지휘를 해주었겠는가 말이야. 그리고 게바라도 실은 아르헨티나 출신이 아니던가 말이다.

산타 클라라 수녀원 뒤로 난 그 어수선한 골목들을 나는 아직껏 잊을 수 없네. 건물 벽을 따라 사람들이 줄을 서서 큰소리를 치기도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쌀 배급을 타려는 사람들이었지. 지나치는 집집마다 왜 그리 껌껌하게 하고 지내던지.

사탕수수 줄기를 갈아 마시던 자네 동족들의 그 깨끗지 못한 손들이라니. 나는 또 어김없이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베트남 시절의 나호아와 나트랑의 어수선한 거리들을 떠올리고 있었다네.

그건 또한 나의 청년시절 궁핍했던 장면들과 오버랩되면서 나를 참혹한 경지로 이끌고 들어갔다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면서 자칫 우월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그 풍경들이 내겐 그러나 결코 예사롭게 비치지 않았다네.

불과 삼사십 년 전에 우리네가 겪었던 그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지. 우리도 전국민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이 궁해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너희네 나라 사람들 참 이상하게도, 싸우고 돌아서면 금세 낙천적인 모습으로 변했었지.

그런데 카를로스, 웬 젊은 친구들이며 노인들이 집 앞의 길가에 나와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었을까?

그래서 자네한테 물었었지. 그러자 자네 대답이 우문(愚問)의 허를 찔렀어. 우린 낙망하지 않아. 우린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 쟤네들한테 일자리만 줘보라구. 다들 얼마나 열심히 일할 친구들인데. 그런데 왜 일거리들이 없지 하고 내가 또 물었지. 정치가 잘못 된 건가?

몰라, 나 그런 거. 우리 잘못 때문만은 아니야. 그렇게 대답할 때 실은 이렇게 덧붙이고 싶어하는 눈빛이었어. 여봐요, 당신들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양반들아, 너무 잘난 체하지 말아. 우리 이제 갓 깨어나기 시작했어. 권투.농구.축구 하는 거 너희네들 봤겠지?

아암, 우린 해낼 수 있고 말고.

이번에 가서 놀랐던 건 자네 나라의 천연자원인 해변 휴양지가 곳곳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관광산업이 바야흐로 21세기를 주도할 기세로 다가오고 있다는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네. 그래, 자네들이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내겐 반가웠다네.

그리고 실은 온 데가 수백 년씩 비바람에 씻기고 인간의 손때가 묻은 올드 아바나는 정말 아름다운 바로크풍의 도시였어. 아바나의 거리 한복판에서 황지우 시인이 함축적으로 툭 내던진 한 마디가 생각난다네. "멕시코는 아니야. 쿠바가 진짜 같애. 형, 봐요. 얼마나 천진난만하게 아름다워?"

(소설가.동의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사진=황지우(시인.한국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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