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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2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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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머니가 동네 아줌마 두 사람과 함께 뒷마당에다 돌을 괴고 가마솥을 올려 놓고는 여러 장정들의 밥을 했다. 푸성귀 된장국과 동네에서 걷은 김치가 전부였지만 그들은 고봉으로 밥을 먹었다. 밥 먹는 동안은 조용하더니 어느 젊은 병사가 어머니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어딘가 긴장된 얼굴로 고향은 왜 묻느냐고 되물었다.

-아주마니 말씨레 페안도 같수다레, 맞디요?

병사가 다시 묻자,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고향이 평양이라고 대답했다.

-기럼 왜 여게서 삽네까?

어머니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신네 오마니는 시집두 안갔시요?

그녀의 대답에 주위의 병사들이 목청을 합쳐서 웃었다. 어머니는 오류동 노관 터널 속에서의 일과 인민군 병사들에게 밥해 주던 때의 얘기,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그 일로 조사를 받았던 일 등을 우리들에게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

우리는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영등포의 중심가를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인천에서 상륙한 미군들은 벌써 여러 지점에서 한강을 건넜다. 아직도 곳곳에 불타고 있는 건물들이 보였고 전봇대들도 여러 군데가 넘어져서 전선을 땅바닥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을 미군 트럭과 탱크와 수륙양용차들이 지나갔다.

어머니는 통장을 보던 방앗간집 아줌마가 경찰과 치안대에 잡혀갔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글쎄 목재소 주인이 사람을 여럿 죽이고 올라갔다는구나.

목재소는 우리 집 건너편에 있었는데 언제나 통나무를 트럭으로 들여다가 전기 톱으로 자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곤 했다. 그 집에 내 또래의 아이가 있었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우리가 병정놀이를 하면서 무기로 쓸 각목들이 필요했는데 그 애가 마음대로 골라 가지게 했다. 우리는 적당한 것들을 가져다가 나무 칼도 만들고 창도 만들어 놀았다. 공작창에 다니던 누구네 삼촌과 그 애 아버지가 무슨 민청 단장이라고 하여 아이들이 모두들 대장집 아들이라고 불렀다. 수복 후에 그 집은 온통 쑥대밭에 빈집이 되어 버렸는데 어머니 말에 의하면 그 목재소 주인이 후퇴 임박하여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영등포시장에 나갔다가 포목점들이 있는 골목에서 서성이는 그 사내를 언뜻 먼발치에서 보고는 그 표정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부침개를 부치고 있는 아낙네 앞에 얼른 털퍼덕 주저앉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먼저 그 얘기를 하고나서 덧붙였다.

-몰려가구 올 적마다 이쪽 저쪽이 서로 해코지를 했지. 손바닥두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구.

수복이 되고 치안이 안정되면서 우리 동네에서도 몇 사람, 그리고 공장이 많았던 이웃 동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갔다고 했다. 한참 뒤에 우리 집에서 인민군에게 밥을 해준 적이 있다고 하여 아버지가 집 맞은편의 파출소에 가서 잠깐 조사를 받았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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