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지나도 끝나지 않은 ‘카틴 숲의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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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폴란드는 같은 슬라브족이면서도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겪어왔다. 갈등의 씨앗은 10세기에 뿌려졌다. 966년 폴란드가 가톨릭을, 988년 러시아가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두 민족 간에 종교적·문화적 이질감이 뿌리를 내렸다. 이후 서로 다른 문화권을 대표하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패권 다툼이 시작됐다.

초기엔 폴란드가 유리했다. 리투아니아와 손잡고 연방국을 구성한 폴란드는 17세기 초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침략해 모스크바를 직접 통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승리는 짧았다. 17세기 중반 이후 쇠퇴의 길을 걷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의해 세 차례나 영토를 분할 당한 끝에 1795년 유럽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부터 123년 동안 폴란드 영토의 상당 부분은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1918년)과 함께 찾아온 독립도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폴란드는 또다시 독일과 소련에 국토를 분할 당했다. 나치군이 폴란드 서부를 침공한 2주 뒤 소련군은 폴란드 동부 지역을 점령했다. 전쟁 직전 히틀러와 스탈린이 체결한 비밀협정(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의 결과였다. 폴란드는 “소련이 등에 칼을 꽂았다”며 분노했다. 카틴 숲 학살도 폴란드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소련은 50년이 지나도록 카틴 숲 학살을 나치군의 소행이라며 발뺌하다 1990년에야 책임을 인정했다.

2차 대전 후에도 소련은 폴란드에 친소 공산정권을 수립해 사실상의 지배를 이어갔다. 해방을 향한 폴란드의 꿈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에야 현실이 됐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양국의 악연은 풀리지 않았다. 독립국가를 수립한 폴란드는 친서방 정책으로 러시아에 맞섰다. 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했고, 2004년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다. 폴란드 당국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 등의 위협을 명분으로 추진하던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기지를 자국 영토에 세우도록 허용하면서 크렘린과 대립했다. 폴란드가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하려는 체첸 반군을 지원하고, 2008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던 그루지야를 지원한 것도 양국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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