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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스캔들 딛고 마스터스로 돌아온 타이거 우즈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오거스타 상공에 비행기는 다시 뜨지 못했다. 엉덩이를 뜻하는 속어 ‘BOOTY’와 불교(BUDDHISM)를 합성한 ‘BOOTYISM’ ‘섹스 중독’ 등의 플래카드를 달고 날면서 타이거 우즈를 조롱했던 이 비행기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비행이 금지됐다.


이로써 마스터스가 열린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는 예년 같은 경건함과 뛰어난 샷을 향한 환호만 남게 됐다. 우즈는 초조와 긴장감 속에서 치러진 첫 라운드에서 이글 두 방과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로 오랜 스캔들을 잠재워 버렸다. 둘째 날에는 일상의 평화 속에서 샷을 날렸다.

이제 우즈를 막을 자는 없다. 1라운드 후 기자회견에서 골프 라이터들은 그의 스캔들에 대해 질문했지만 2라운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자 필봉은 무뎌졌다. 이제 화제는 포르노 스타가 아니라 우즈의 파와 버디 퍼트가 됐다.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처럼 우즈는 황제의 위용을 되찾았다.

우즈는 경기 후 “나는 어제보다 공을 더 잘 쳤고 퍼트도 좋았다. 경기를 컨트롤했기 때문에 더욱 편했다”고 했다. 컨트롤한다는 말에 무게가 실렸다. 그는 ‘일반 PGA 투어 대회에도 나올 것이냐’는 질문에 “나가고 싶지만 잘은 모르겠다. 대회가 끝나고 그 문제를 생각해 보겠다”며 약간 주춤하긴 했다. 그러나 그가 13년간 통치하던 골프 세계의 황제로 돌아온 것은 확실하다.

우즈는 10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7436야드)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쳤다. 버디 3개와 보기 1개가 나왔다. 전날 4언더파를 더해 중간 합계 6언더파다. 공동 선두 리 웨스트우드, 이언 폴터(이상 잉글랜드)에게 2타 차 공동 3위다.

그는 평소와 달리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나왔다. 샷을 할 때만 벗었다. 갤러리의 시선이 두렵거나 숨길 게 있어 그런 건 아니었다.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겨 끼게 됐다”고 했다. 섹스 스캔들로 시달리던 144일 동안 얼굴을 찡그리고 지냈던 그는 선글라스 속에서 웃기 시작했다. 코스에서도 기자회견에서도 미소가 넘쳤다.

그는 첫 홀 티샷을 훅을 내 나무 밑으로 들어갔지만 과거에 그랬듯 멋진 파 세이브에 성공해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평소에 보기 힘든 행동도 했다. 3번 홀 티잉 그라운드로 가는 길에 아버지의 목말을 탄 소녀를 보고는 미소를 짓고 악수를 해 줬다. 그는 과거 코스에서는 경기에만 집중하며 누구에게도 사인을 해 주지 않았으며 신경질적으로 보이던 선수였다. 1, 2라운드 내내 그를 따라다닌 기자가 잠시 보이지 않자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기자는 화장실에 다녀온 터였다.

그는 1라운드보다 여유 있게 경기했다. 파5인 13번 홀에서 그린까지 218야드밖에 남지 않았는데 레이업을 했다. 그는 1라운드에선 이 홀에서 2온에 성공했다. 우즈는 “(핀 위치로 볼 때) 직접 공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세 번째 웨지 샷이 기대와 달리 홀 5m가 넘는 곳에 떨어졌지만 버디를 잡았다. 어려운 14번 홀에서 그는 20m가 넘는 거리에서 2퍼트로 마무리해 파를 지켰고, 15번 홀에서 4m 버디 퍼트를 우겨 넣었다. 첫 라운드보다 2타가 늘어났지만 어려워진 핀 위치와 딱딱한 그린을 감안했을 때 2라운드 성적은 만족할 만했다.

144일간의 공백이 있던 선수의 성적으로는 놀랍지만 우즈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같은 조에서 경기한 매트 쿠차(미국)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우승한 2008년 US오픈에서처럼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우즈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8년 US오픈만큼 큰 박수는 받지 못했다. 황제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는 다시 과거 같은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2라운드에도 그의 부인 엘린은 대회장에 나타나지 못했다.

5개월 공백 우려 단숨에 날려
지난해 교통사고 이후 우즈는 계속 벼랑 끝으로 몰렸다. 초기 대응이 미숙했기 때문에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와 관계한 여자는 끊임없이 나왔다. 그는 섹스중독 치료를 받고 사과 회견까지 했지만 여론은 좋지 못했다. 스포츠 스타로서는 치명적인 금지 약물 의혹도 제기됐다.

마스터스 직전까지 타블로이드는 새롭고 자극적인 사실을 파냈다. 한 여인은 그와의 관계에 대해 입을 닫는 조건으로 1000만 달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의 과거 여인 중 하나는 마스터스 대회에 나와 우즈를 직접 보겠다고 선언했다. 우즈의 에이전트 마이크 스타인버그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이 그의 불륜을 도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우즈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가 황제로 돌아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힘, 바로 성적이다. 마스터스는 완벽한 무대였다.

마스터스 출전 선수 수는 100명 이내로, 다른 메이저 대회(156명)에 비해 훨씬 적다. 산술적인 우승 가능성이 크고 한 골프장에서만 열리기 때문에 우즈에게 익숙하다.
이곳에서는 우즈의 불륜에 대해 수군대기 어렵다. 대회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구약성서 같은 근엄함을 가지고 있다.

‘오거스타의 제왕(Lord of Augusta)’이라고 불리는 클럽 회장은 중계방송사도 완벽히 통제한다. 중계권을 다른 메이저 대회의 3분의 1 정도 가격에 주는 대신 방송사는 제왕의 귀에 거슬리는 멘트를 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 앵커나 해설자에게 자비는 없다. 1994년 CBS의 간판 앵커 개리 매코드는 “그린이 비키니 왁스(bikini waxing)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가 제왕의 요구로 해고됐다. ‘bikini waxing’은 은밀한 곳에 난 체모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해설자는 ‘13번 홀 그린 뒤에 시체들이 굴러다닌다’고 했다가 역시 그만둬야 했다. 13번 홀 그린을 넘어가면 내리막 어프로치샷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쁜 스코어를 내고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는 선수가 많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인데 역시 용서받지 못했다.

갤러리도 그렇다. 오거스타는 갤러리를 패트런(후원자)이라고 부른다. 한번 패트런이 되면 평생 티켓을 살 권리가 생긴다. 그러나 코스에서 뛸 수도 없고, 플래카드를 가지고 나올 수도 없으며, 선수에게 사인을 요구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바로 쫓겨나며 이듬해부터는 티켓을 살 수 없다. 티켓을 살 특혜를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스터스의 갤러리는 클럽의 지침을 100% 따른다.

제왕은 미디어도 통제한다. 오랫동안 취재한 언론사가 아니면 취재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아 타블로이드와 파파라치의 접근이 어렵다. 기자회견 질문자도 클럽이 선정한다. 우즈에겐 더할 나위 없는 복귀 무대다.

1라운드에서 코스 상공을 날았던 세스나기는 비행기를 이용해 광고를 하는 대행업체가 회사 홍보를 위해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직원은 “안전벨트에서 아주 미세한 문제에 불과했는데 비행 금지를 받았다”고 아쉬워했다. 비행 금지는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에서 요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오거스타 클럽 회원은 비공개이지만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이 포함된 파워 엘리트다.

클럽은 ‘우리 정책이 싫으면 나오지 마라’는 확고부동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단체들이 “여성회원을 받으라”며 중계방송사인 CBS의 광고업체 불매운동을 한 적이 있다. 클럽은 CBS에 중계권료를 받지 않고 광고 없이 방송하게 했다. 그리고 이겼다.

선수들에게도 끌려다니지 않는다. 선수의 부인이 맨발로 걷다가 퇴장되고 마스터스 재킷을 입었던 적이 있는 비제이 싱도 룰을 지키지 않으면 대회 참가를 못 한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우즈에게도 마찬가지다. 현 클럽 회장 빌리 페인은 대회를 앞두고 “우즈는 어린이들의 롤모델이 돼 주기를 기대했던 우리를 실망시켰다. 앞으로도 우즈는 그의 경기력이 아니라 개과천선하겠다는 진정성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훈계했다.

우즈는 이에 대해 “내가 잘못한 게 맞다”고 했지만 속으로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클럽은 뼛속까지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정서가 박혀 있다. 남녀 차별은 물론 인종 차별로도 유명하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60년대 출전 자격을 갖췄는 데도 흑인 선수에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 선수 중 하나는 우즈가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 찰리 시포드다. 우즈는 97년 전례 없던 12타 차로 우승하면서 클럽에 복수했지만 클럽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유명한 ‘프라이드 치킨 사건’에서 우즈의 마음속을 볼 수 있다. 97년 그가 우승했을 때 과거 챔피언인 퍼지 젤러가 방송 인터뷰에서 “그 아이가 내년 챔피언스 만찬에 (흑인들이나 먹는) 프라이드 치킨이나 케일을 요리하게 하지 마라”고 농담을 했다. 젤러는 즉각 사과했지만 우즈는 한동안 이를 외면했다. 그러면서 젤러는 스폰서가 끊기고 엄청난 여론의 비난에 시달렸다. 우즈는 10개 월 후 “젤러를 용서했지만 잊지는 않겠다”고 했다. 오거스타 내셔널의 과거도 잊지 않을 것이다.

‘태극 듀오’ 최경주, 양용은 선전
한편 최경주(40)는 2라운드에서 버디 3개에 보기 2개로 1언더파를 쳤다. 우즈와 똑같은 6언더파 공동 3위다. 1, 2라운드에서 우즈와 경기한 최경주는 3라운드에서도 한 조에서 만나게 됐다. 전반 보기 2개와 버디 1개를 했던 최경주는 13번 홀(파5)과 16번 홀(파3)에서 버디를 잡아 선두권을 유지했다. 그는 “후반에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퍼트가 잘 됐고 14, 15번 홀 파세이브에 성공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재미동포 앤서니 김도 2언더파를 더해 6언더파다. 6언더파에는 필 미켈슨, 리키 반스(이상 미국) 등 모두 5명이 포진했다.

양용은(38)은 2라운드 이븐파, 중간 합계 5언더파로 8위에 올라 역시 우승 사정권에 있다. 양용은은 후반 들어 샷감이 부쩍 나빠졌는데 아슬아슬하게 파세이브를 성공시키면서 타수를 지켰다. 그는 “어제보다 초반에 버디가 안 나오고, 약간은 긴장이 되면서 타수를 줄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용은은 1, 2라운드에서 함께 경기한 미켈슨과 3라운드에서도 함께 티샷을 한다.

노장 투혼은 약간 수그러들었다. 1라운드 6언더파 선두였던 프레드 커플스(50·미국)는 2라운드에서 3오버파를 쳤다. 1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쳤던 61세의 톰 웟슨(미국)은 둘째 날 1오버파를 기록했다. 두 선수는 나란히 3언더파 공동 9위다. 1라운드 69타를 친 샌디 라일(52·스코틀랜드)은 2라운드에서 86타를 쳐 컷 탈락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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