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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금강산 새 사업자 선정” … 걱정 태산 고성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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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황당하고 암담합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강원도 고성 지역의 경기가 얼어붙었다. 사진은 문을 닫은 식당. 일부 수조의 유리가 깨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다. [고성군 제공]

9일 만난 강원도 고성군번영회 이영일(63) 회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언하니 황당하다. 고기도 잡히지 않아 금강산 관광이 고성 경제에 큰 몫을 차지했는데 어떻게 살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은 8일 금강산 지구 안에 있는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소유 부동산을 동결했다.

또 현대아산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새 사업자로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고성 지역 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금강산으로 가는 7번 국도 옆 식당 ‘금강산도 식후경’의 주인 차명숙(43)씨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250석 규모의 식당은 거의 텅텅 비었다”며 “월세 100만원을 벌지 못해 보증금을 까먹고 있다”고 말했다. 현내면 명파리 민간인통제소까지 금강산 가는 길가의 식당과 건어물가게 상당수도 문을 닫아 썰렁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가게가 문을 열고 있었으나 손님은 거의 없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바로 문을 닫았다는 ‘해금강 횟집’의 수조는 유리가 깨진 채 시멘트 바닥에 방치돼 있었다. 식당 앞에는 냉장고 등 각종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잠긴 문 안쪽에는 각종 물품이 쌓여 있는 등 창고로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이 식당은 최근 경매로 나왔다.

손님이 없어 겨울에는 닫았다가 3월 말에 문을 열었다는 ‘민통선 장터식당’ 주인 구연옥(62)씨는 “식당 계약 기간이 다 됐는데 북한의 발표로 관광이 재개될 가망이 없어졌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증금에서 월세(50만원)를 제하고 있다는 구씨는 “생활이 너무 힘들어 최근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신청을 위해 면사무소를 찾아갔지만 나이 때문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어려운 것은 자영업자뿐이 아니다. 정훈영(31·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씨는 최근 6·2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현대아산 직원으로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화물과 자재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다 지난해 6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다시 입사할 생각이었는데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고성군에 따르면 최근 수개월 동안 군내 식당과 건어물판매점 등 159개 업소가 문을 닫았고, 현대아산 직원을 포함해 58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경제적 손실액은 총 580억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황종국 고성군수는 “이번 사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북한의 술책을 그대로 보여 준 것으로 멋대로 하는 그네들의 행태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심도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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