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지식인 지도] 생태여성주의 여전사 반다나 시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49)는 현재 인도의 과학.기술.생태연구재단의 대표로 개발과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자연과 지식을 약탈하고 있는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녀는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관점에서 '생물 해적질(biopiracy)' 과 지적재산권의 폭력성, 그로 인한 정신의 획일화 문제를 열한권의 저서에 담았다.

그녀가 인도 출신의 여성이란 점은 이런 사유를 형성한 배경이다. 그녀는 인도와 같은 제3세계의 여성에 대한 서구의 경제적.문화적 약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며 급진적인 과학자" 라고 그녀를 치켜세웠다. 활발한 제3세계 연대활동을 인정받아 1993년 제3세계인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올바른 삶을 기리는 상(Right Livelihood Award)' 을 받았다.

시바의 원래 전공은 핵물리학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구 과학기술관이 지배하는 상아탑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길을 택했다. 생태운동가로 변신한 것이다.

1980년대 인도의 여성들이 대규모 벌목에 반대해 나무둥치를 얼싸안고 시위를 벌인 칩코(Chipko)운동은 그녀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녀는 이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1999년엔 세계무역기구(WTO)의 밀레니엄라운드를 반대한 미 시애틀 시위에도 참가했으며,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의 인도 진입을 막는 시위와 운동에도 앞장섰다.

***서구문명은 가부장제 기획

생태운동과 여성운동을 결합한 시바의 에코페미니즘은 서구의 과학을 '가부장제적 기획' 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녀의 눈으로 보기에 유럽에서의 과학혁명은 '어머니인 대지' 인 자연을 기계와 원자재의 자원으로 바꾸어 놓는 것에 불과하다.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이 이렇게 변형됨으로써, 여성과 자연에 대한 착취와 침범을 제한하는 모든 윤리적인 제약들을 제거해 버렸다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은 곧 자연이고, 남성은 과학문명이다.

따라서 시바에게 '가부장제의 기획' 인 과학은 여성과 자연의 지식과 창조성을 무시한 원흉일 따름이다. 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게 지적재산권에 관한 문제다. 이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바로 여성지식의 비(非)전문화와 파괴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일례로 시바는 인도의 숲이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숲의 파괴와 더불어 임업에 관해 여성들이 갖고 있던 전문 지식도 파괴됐다고 본다. '과학적 임업' 이란 실제로는 이윤 극대화를 위한 서구적 욕심에서 비롯된, 여성을 배제하는 임업에 불과한 것이다. 인도 가르왈 지방 여성들의 칩코운동은 이런 '배제' 에 대한 저항이었다.

***다양성.모성 파괴의 역사

자연친화적인 여성의 지식이 비전문적이라고 무시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남성 과학자.의학자들에 의한 모성(母性)의 파괴를 보자. 시바는 여성이 남성 과학자나 의학자들의 시술대상에 불과하다는 주장까지 거침없이 한다.

예를 들자. 원래 아이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어머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합리성을 내세운 의사들은 어머니의 지식을 무시하며 산모를 무지한 '몸뚱이' 로 생각한다. 이때는 의사만이 지식을 갖춘 '정신' 이 된다. 시바는 이런 이율배반적 과학을 거부하며 모성의 회복을 강조한다.

시바의 이런 시각은 여성의 몸만이 아니라 생물 하나 하나가 자기발생적이고 유기체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보는데까지 확장된다. 자연을 약탈한다 함은 자연의 '몸' 을 무지한 것으로 간주하고 마음대로 침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바가 말하는 '생물 해적질' 이란 이런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다.

또한 시바는 특허라는 명목으로 생명체의 소유권을 갖는 생물 해적질은 서구 자본의 새로운 식민지 '발견' 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서구의 자본은 이제 여성.식물.동물의 내부공간(즉 육체)이라는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어 약탈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서구의 발달된 유전공학은 모든 생명체가 지닌 유전자 코드를 식민화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미리어드 제약회사는 진단과 검사를 독점하기 위해 여성의 유방암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냈다. 여성의 몸의 일부를 제약회사가 갖는 꼴이다. 파푸아 뉴 기니의 하가하이 인디언의 세포주(cell line)는 미국 상무부가 특허를 갖고 있다.

그럼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 시바는 우선 자연과 여성의 관점에서 서구의 과학기술문명과 다국적기업의 폭력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3세계 여성들의 시각에서 볼 때 생산성이란 생명과 생계를 생산하는 척도이며, 잉여란 공동체에 필요한 물자 이상으로 생산된 물질적 잉여가 아니라 자연과 여성들에게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강탈하고 착취한 것을 말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개발이라고 불린 것은 성(性)차별에 근거해 여성의 능력을 무시하고 생태위기를 조장하는, 자연의 고갈에 대한 동의어다.

에코페미니스트로서 시바의 중요성은 여성을 단순한 희생자로 부각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여성과 자연은 지금까지도 높은 수준의 지식과 창조성과 생산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시바는 여성적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여성을 다시 전통적인 '대지(자연)인 어머니' 의 이미지로 묶어둘 위험이 있다.

또한 인도 내부의 계급문제보다는 세계체제 비판에 더 비중을 둔다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이 처한 환경이 달라져야 함을 강하게 역설한다는 점에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생물 주체성 비웃는 知財權

제3세계의 여성.어린이.민중이 처한 위기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위기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하나의 특정계급(부르주아)이나 하나의 특정 종(인간)의 특정 인종(백인), 그 인종의 특정 성(남성)이 앞장서서 자연과 지식을 획일화하고 사유화하는 세계는 분명 오염된 세계다.

고정갑희 한신대교수.영문학

□ 반다나 시바는…

▶1952년 인도 출생.

▶78년 캐나다 토론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 받음.

▶78~82년 인도 매니지먼트 연구소 근무.

▶83~현재 인도 과학.기술.생태연구재단 대표.

▶93년 제3세계의 노벨상인 '올바른 삶을 기리는 상' 수상.

□ 관련서적들

<번역서>

▶살아남기 : 여성.생태학.개발(강수영 옮김, 솔, 1998년).

▶에코페미니즘(마리아 미즈와 공저, 손덕수.이난아 옮김, 창작과 비평사, 2000년).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한재각 외 옮김, 당대, 2000년).

<미번역서>

▶녹색혁명의 폭력성(1991년).

▶정신의 획일화(93년).

▶씨앗과 대지 : 생명공학과 재생의 식민화(9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