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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알렉산더' 만든 올리버 스톤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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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플래툰'과 'JFK'의 올리버 스톤(58.사진) 감독도 나이가 든 것일까. 베트남전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 등 미국 현대사회의 구린 구석을 정면으로 파헤치던 뚝심의 돌쇠(stone)가 2300년 전 자유와 정의를 향한 세계 정복자의 꿈을 좇은 사극 '알렉산더'를 들고 돌아왔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헬레니즘 세계의 국경을 인도의 들머리까지 확장시키며 역사의 흐름을 바꿨던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년)의 33년 짧은 삶을 그린 영화에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지배하는 세계평화)와 네오콘(신보수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24일 미국 개봉(12월 국내개봉)을 앞두고 전세계 기자를 불러 시사회를 연 그를 7일(현지시간) 오후 로스앤젤레스 스타의 거리 세인트 레지스 호텔에 마련한 기자회견장에서 만났다.

-왜 지금 알렉산더인가. 이라크 침공 등 중동을 향한 공격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바짝 고삐를 쥘 참인 이 때에 해방을 내건 세계제국 건설의 영웅을 되살린 까닭이 궁금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인간으로서 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탁월한 용기와 의지로 한계를 극복하며 열혈남아로 살았다. 그의 건강한 영혼, 새 땅을 감싸안는 꿈, 문화권과 국경을 넘어선 관계망 구축 등 오늘의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알렉산더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해왔으니 오늘의 정치상황과 맞닥뜨린 건 우연일 뿐이다."

-영화에서 알렉산더는 양성애자로 묘사됐다. 불분명한 죽음의 원인도 독살로 암시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허구인가.

"그리스 시대에 남자들 사이의 동성애는 교육과정의 하나였다. 다만 표현은 우리 현실에 맞춰 은근하게 조절했다. 전투 장면의 경우, 군사전문가와 역사가의 고증을 들어 당시에 썼음직한 무기를 그대로 만들고 배우와 엑스트라를 훈련시켜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 복원을 꾀했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말과 인간과 코끼리가 엉기며 빚어내는 핏빛 싸움터 장면은 삶과 죽음의 구분에 대한 나의 울타리 지우기라 할 수 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상상력의 힘을 확인하는 것, 바꿔 말하면 알렉산더의 꿈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알렉산더가 죽은 뒤 그가 세운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먼저 간 위대한 친구를 회상하는 톨레미(안소니 홉킨스)의 내레이션으로 흘러간다. 톨레미가 당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톨레미는 알렉산더의 치적을 기록으로 후대에 전한다. '두려움을 정복하라'고 외치는 알렉산더의 육성은 한 인간의 쓸쓸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신의 위치에 오른 그도 암살 당한 선왕의 혼령과 자신의 영혼을 움켜쥔 어머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역사가의 시선처럼 알렉산더의 발자취를 내려다보는 하늘의 독수리가 오히려 내가 견지하려고 했던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

로스앤젤레스=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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