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機密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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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기밀(機密)은 정치·군사·국가와 관련된 긴요한 공적 비밀을 뜻한다. 명(明)나라 학자 매응조(梅膺祚)가 편찬한 『자휘(字彙)』는 “기(機, 군사와 나라의 큰일)는 밀(密, 은밀한 일)이다”라고 정의했다. 현행 법률 7613호인 ‘군사기밀보호법’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사기밀의 보호와 처벌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군사기밀은 누설될 경우 안보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Ⅰ급(top secret), Ⅱ급(secret), Ⅲ급(confidential)으로 나눈다. 일본은 군사기밀을 비(秘), 방위비밀(防衛秘密), 특별방위비밀(特別防衛秘密)로 나누어 관리한다.

중국의 병서(兵書)인 『육도(六韜)』에 실린 무왕(武王)과 강태공(姜太公)의 문답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함의하는 바가 작지 않다. 무왕이 적군과 아군이 팽팽하게 대치한 상태에서 승리를 위한 대처법을 물었다. 태공의 답이다. “겉은 어지러우나 안은 정돈되고(外亂而內整), 굶주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식량이 충분하며, 정예군이면서도 겉으로는 둔한 군사처럼 보여야 합니다(內精而外鈍). 한 번은 군을 모으고 한 번은 분산시켜, 꾀하는 바를 숨기고, 기밀을 은폐해야 합니다(陰其謀,密其機). 보루를 높이고, 정예를 매복시킵니다. 조용히 소리를 없앤다면 적은 우리가 방비하는 곳을 모를 것입니다. 서쪽을 치고자 한다면, 동쪽을 습격하십시오.” 무왕은 이어 적이 아군의 기밀을 알아챘을 경우의 대비책을 물었다. “군이 이기는 방법은 은밀하게 적군의 기밀을 살피고(密察敵人之機), 빠르게 그 이로움을 틈타 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바를 급습해야 합니다.”

이렇듯 기밀 보호는 승리의 관건이다. 한편 국방장관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때’와 ‘공개함으로써 국가안보에 현저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는 때’ 군사기밀을 공개할 수 있다고 법은 규정하고 있다. 국민과 소통(疏通)하라는 뜻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군당국과 매체들의 대응 과정을 되새겨 보면 기밀 관리의 소밀(疏密, 성김과 빽빽함)이 아쉽다. 향후라도 기밀 운용의 노련함을 기대해 본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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