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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시' 탈락할 뻔한 포항, 시민들이 공장 유치해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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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시민들이 산업도시 포항을 되살렸다.

인구 50만명 선을 위협받아 자칫 '특정시'에서 제외될 위기였던 포항이 최근 현대중공업 선박블록 공장을 유치하는 데 성공해 산업도시의 위상을 지켰다. 1995년 54만명이던 포항 인구는 지난해 51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업체들의 생산설비 첨단화로 일자리가 준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포항에 30만평 규모의 선박 블록(선체를 이루는 덩어리 조각) 제작 공장을 짓기로 포항시와 합의했다. 현재 1단계 사업부지 3만여평의 토지보상을 진행 중이며, 29일 착공해 내년 8월께 준공할 예정이다. 나머지 27만평도 새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대로 공사에 들어가 2~3년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포항시는 30만평이 모두 개발될 경우 정식 고용인원만 6500여명, 관련 배후 산업까지 합치면 3만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호황을 맞아 당초 울산에 공장을 증설하려 했으나 마땅한 땅을 구하지 못했다. 이후 중국 산둥반도 일대와 포항.목포(대불공단) 등을 놓고 저울질하다 포항을 최종 낙점했다.

정장식 포항시장은 공장 유치 성공에 대해 "시민들과 공무원, 기업, 지역단체 등의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포항시는 지난 4월부터 매달 공개토론회를 열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또 행정 처리에 드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현대중공업을 대신해 시청 직원들이 직접 서류를 들고 토지공사.수자원공사 등 관련 기관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시민들도 적극 나섰다. 포항시의회 이진수 건설도시위원장은 "현대중공업 포항공장은 주민들의 최대 관심사"라며 "이 공장을 짓는 데 불만을 제기하는 민원은 한 건도 제기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야산과 하천 부지 등으로 이뤄진 1단계 부지 매입 역시 빠르게 진행됐다. 포항시 신항만추진위 이복길 담당은 "1차 협의과정에서 이곳에 땅을 가진 65명의 땅 주인이 모두 찬성했다"고 전했다.

공장 입주를 꺼려온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들도 이번엔 달랐다. 포항환경단체연합 박창호 운영위원장은 "기본적으로 현대중공업이 공장을 짓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게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현대중공업 공장 부지는 주택가와 멀어 주민들에게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며 "이 공장은 인구 유입과 고용 창출 효과가 커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수.변호사.사회단체 임원 등 주요 지역 인사 150여명으로 구성된 포항지역발전협의회(회장 이대공)도 큰 몫을 했다. 이 협의회는 현대중공업 측에 "포항으로 와 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포스코에는 현대 포항공장에 중후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대중공업 민계식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은 얼마 전 포항을 방문해 공장 부지를 돌아본 뒤 포항시에 감사 편지를 전달했다. "공장부지 확보 과정에서 포항시와 시민들의 단합된 힘과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앞으로 우리 공장은 포항의 무궁한 발전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로 끝을 맺었다.

포항=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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