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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교단 45년·죽어선 장학금 3억 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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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20일 서울 남산길의 안중근(安重根)의사 숭모회에서는 기부금 증정식이 있었다. 1963년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아흔살로 생을 마감한 이종락(李鍾樂.사진)선생의 유족들이 가져온 1억원. 이어 26일에는 성균관대와 이화여대에 1억원씩이 전달됐다. '살아있는 딸깍발이' 라는 말을 들으며 교직에 평생을 바친 고인이 남긴 전재산이다.

딸깍발이란 강직.청렴의 상징이던 조선조 남산골 선비들의 별명. 유족인 7남매가 전하는 그의 생애는 그런 모습이었다.

고인은 일제 때인 31년 김포의 보통학교에서 시작해 76년 서울 영화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5년을 교단에 섰다.

"민족 정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과 여성차별을 말아야 한다는 점을 늘 말씀하셨지요. "

그의 옛 제자들은 그가 한번도 일본어를 쓰지 않았고, 늘 스스로 수선한 구두만 신어 걸을 때마다 '딸깍' 소리가 났다고 회상한다. 그는 40여년간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집에 모셔놓고 명절 때마다 제사를 지내왔다. 은퇴 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조그만 집에 혼자 살면서도 계속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86년 그는 '민족정기.사학육성.여성권익 보호' 를 요지로 한 유언장을 미리 남겼다. 지난해 말 그가 숙환으로 세상을 뜬 뒤 7남매는 3억원의 유산을 그 뜻에 따라 세 곳에 기증키로 했다.

서울의 한 택시회사 이사인 장남 휘영(60), 서울산업대 산업공학과 교수인 넷째 원영(46), 현역 육군중령인 막내 민영(43)씨 모두 자기집을 갖지 못한 처지지만 "아버지 말씀이 더 소중하다" 고 말했다.

손민호.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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