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일본 사진고고학자 고토 가즈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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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일본 저널리스트 고토 가즈오(後藤和雄.65)의 명함에는 사진 고고학자.대영박물관 특별연구원.베르주르박물관 주임연구원 등 여섯 개의 직함이 적혀 있다.

그는 이 가운데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사진 고고학자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기록할 가치가 있는 옛날 사진을 발굴.보존하고 사진의 역사를 규명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은 아사히(朝日)신문 석간 사진데스크를 맡고 있던 1984년 6월. 한 독자가 전화를 걸어 "부친의 유품에서 70년 전 홍콩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왔다" 고 제보한 뒤 사진을 건네주었다.

"편집국 내에서 '옛날 사진이 뉴스가 되느냐' 는 반론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색 풍물이 화제 거리가 될듯 해 84년 7월 3일자 석간 한 면을 헐어 '70년 전의 홍콩' 이라는 화보를 냈습니다. "

독자의 반응은 뜻밖에 뜨거웠다. 비장의 사진을 제공하겠다는 독자전화가 쇄도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천5백명의 독자에게서 1만장의 사진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매달 한번씩 '오래된 사진' 이라는 특집을 1년9개월간 연재하고 사진집도 냈다.

어느 날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본국에 보관된 에도(江戶)바쿠후(幕府) 말기 사진을 보여주겠다" 는 연락을 받았다. 전해받은 사진은 모두 8백점.

주로 일본 개화기의 사진으로 공개되지 않은 귀중한 기록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역사학자와 함께 4백50점을 골라 1년간 전국 순회 전시회를 열고 '되살아난 막말(幕末)' 이라는 화보를 펴냈다.

"독자들이 옛날 사진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갖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업을 떠난 뒤 19세기말 일본과 접촉이 잦았던 영국.프랑스.미국 등에서 당시의 기록사진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는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 학자들도 놀랄 만한 굵직한 성과를 올렸다. 프랑스 청년이 1882년 일본을 6개월간 여행하면서 찍은 귀중한 풍물사진들을 발견, 98년 '봉주르 재팬' 을 출간했다.

대영박물관에선 19세기말 일본 고분을 연구했던 고고학자 윌리엄 갈란드의 발굴품과 고분 사진들을 찾아냈다. 학자들과 함께 이를 정리해 내년에 책을 낼 계획이다.

그는 "소실되기 전에 초창기 사진들을 발굴.보존하는 작업은 후세들을 위해 꼭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닐 것 같지만 의외로 여행 때는 스케치북만 갖고 다닌다. 59년 와세다대를 나와 아사히신문에 입사, 사진부장을 거쳐 96년 정년퇴임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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