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직 전문기자 칼럼] '밀실 낙점' 출연硏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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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하겠다-. "

1999년 초 정부가 각 부처에 소속돼 있던 43개 출연연구기관을 한 곳(국무총리 산하)으로 모으며 내세운 목표다. 정부는 당시 이들 연구기관을 경제사회.인문.기초기술 등 5개 분야로 나눠 연구회를 만들고 민간 전문가들을 관리주체로 위촉했다.

그 중 하나가 이번에 '이사장 사표' 파문이 일어난 경제사회연구회(http://www.kcesri.re.kr)다. 이 연구회는 특히 '배짱' 이 두둑해 "○○○원장을 바꾸라" 는 정부 요구를 "임기 중에는 못한다" 며 두차례나 거부했다고 한다.

원장 임기가 끝나면 예외없이 관료가 아닌 전문가를 새 원장으로 뽑았다. 정부 입김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원장 선출이 이어지자 낙하산식 임명제에선 감히 엄두도 못냈을 '백은 없지만 능력있는' 전문가가 원장직에 도전해 성공하기도 했다.

하나 둘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연구기관도 나타나는 등 연구회는 새 바람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2년이 고작이었다.

올들어 정부는 민간이사를 10명에서 7명으로 줄이는 등 잇따라 '바람 잠재우기' 조치를 취했고, 그 결과 연구회의 '신풍(新風)' 은 맥없이 잦아들었다. 연구회는 스스로 2년 연속 최우수 연구기관으로 선정한 연구원의 원장도 재임시키지 못한 반면 전직 관료 3명을 잇따라 원장으로 선출했다.

연구회 이사장이 사의(辭意)를 강력하게 표명한 이래 일부 민간이사들도 "우리 역할이 무엇인가" 하며 허탈해 한다고 들린다.

모 연구원 원장직에 응모했던 한 전문가는 "정부측은 대부분 이사(차관)가 아닌 대리인(주로 국장급)을 소견발표장에 내보낸다. 사전에 지침을 받았을 국장들 앞에서 소견발표를 잘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 형식적인 선출 절차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괜히 응모해 '해명할 기회도 없는 음해' 에만 시달렸다" 며 불쾌해 했다. 정부가 마음을 바꿨는데 시스템을 그대로 둔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려면 아예 정부가 임명하든지, 아니면 민간이사들이 추천하는 복수 후보 중에서 낙점하라" 는 게 전문가들의 제안이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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