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현종 '바보 만복이'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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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거창 학동 마을에는

바보 만복이가 사는데요

글세 그 동네 시내나 웅덩이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 바보한테는

꼼짝도 못해서

그 사람이 물가에 가면 모두

그 앞으로 모여든데요

모여들어서

잡아도 가만 있고

또 잡아도 가만 있고

만복이 하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다지 뭡니까.

- 정현종(1939~) '바보 만복이' 중

삶의 무작위성이 주는 경이를 깊숙이 건드리고 있는 시다. 이런 시를 읽고 있으면 우리 가슴은 한껏 고양되는데, 그것은 '바보 만복이' 같은 천연스런 삶이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인간의 깊이, 자연의 깊이를 회복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안에는 거창 학동 마을에서 물고기 잘 잡는 만복이뿐만 아니라 아직 발굴되지 않은 여럿의 '천연' 만복이가 살고 있다. 올 여름에는 어디 가서 그것을 찾아보시도록!

이시영(시인)

오늘부터 2개월 예정으로 '시가 있는 아침' 은 이시영 시인이 맡습니다.

▶1949년 전남 구례 출생▶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집 『만월』『바람 속으로』『무늬』 등▶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등 수상▶창작과비평사 상임고문,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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