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둑맞는 공적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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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잘못되면 곧바로 국민 부담 증가로 연결되는 공적자금과 공공기금이 방만하게 운용되고 있음이 어제 대검찰청의 발표로 또다시 드러났다.

대검에 따르면 불법 대출.자금유용 등으로 금융기관에 손실을 입혀 공적자금을 투입하도록 만든 비리액이 1조4천여억원이며, 허위서류 작성 등으로 신용보증을 받아 대출금을 떼먹는 식의 공공기금 횡령 비리액이 5천2백억원으로 나타나 모두 2조원 가까운 돈이 유용됐다.

발표 사례들은 대부분 대검이 연초부터 '공적자금 및 공공기금 손실 유발 비리' 를 집중 단속하면서 보도됐던 내용들의 종합이지만, 그럼에도 도덕성이 생명인 금융기관 임직원이 고객의 예탁금에까지 손을 대 유용하는 것이라든지 기업인이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생계형 창업자금 등을 떼먹는 사례 등을 보면 도덕적 해이와 부패.비리가 우리 사회 전반에 얼마나 만연돼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동안 정부는 검찰뿐 아니라 금융감독원.국세청.예금보험공사 등 관련 정부기관들을 활용해 공적자금의 투입을 초래한 금융기관 임직원과 부실기업주를 조사.수사해 왔으며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발표에서도 언급했듯이 공적자금.공공기금 관련 비리가 예상보다 심각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면 배전(倍前)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1백40조원이 투입된 공적자금의 경우 4월 말 현재 회수율이 24% 정도밖에 안돼 자칫하다간 국민 부담의 급증이란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회수율이 60%가 안되면 현재의 재정으로 충당할 수 없고 세율을 크게 올려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연구결과도 있었다.

물론 조사나 수사가 지나치면 금융기관 임직원들을 위축시키고, 자금시장 경색 등의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운용의 문제다. 사회의 룰을 바로세우고 도덕적 해이를 해소한다는 원칙의 문제가 더 중요한 만큼 불법과 비리는 엄하게 다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금융기관에 무려 20여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도록 만든 대우그룹의 부실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책임을 다시 상기하고자 한다.

또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서울보증보험과 공적자금은 아니지만 막대한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은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의 부실에 당해 기관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리 등의 책임은 없었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주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시키는 정부의 정책적 잘못이 반복돼선 안된다는 점이다.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억지로 살리려다가 부실이 더 커진 동아건설 등 일부 워크아웃 업체들의 사례에서 보듯, 잘못될 경우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이 추가 조성돼야 할 현대그룹을 살리기 위해 금융기관을 강제하거나 공기업을 활용하는 식의 편법을 동원하는 행태는 중단돼야 할 것이다. 억지와 편법이 사용될수록 도덕적 해이와 비리는 더욱 만연함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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