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세계 마땅히 기려야] 유종호 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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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그릇 큰 시인을 가늠하는 척도는 무엇일까? 첫째가 풍요한 작품량이며, 둘째는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언어구사, 셋째는 독자적인 세계 이해나 통찰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화사집』에서 『늙은 떠돌이의 시』에 이르는 14권의 시집을 보여준 미당 서정주 선생이 20세기 최대의 한국시인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풍요한 생산량이 졸속적 대량생산의 소산인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미당의 경우 끝자락의 『산시(山詩)』같은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한결같이 높은 수준과 균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언어의 창의적 구사는 독자에게 새로운 인지의 충격을 가하게 마련인데 그러한 사례는 미당 시 곳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미당의 시력 65년은 정상에서의 끊임없는 모색과 변모와 성취의 눈부신 기간이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란 도전적인 선포로 시작되는 '자화상' 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청년기의 미당에게서는 '저주받은 시인' 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자임이 보인다. 징그러운 뱀과 문둥이와 보리밭의 야외 정사 등 통념상의 비시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자학과 오뇌의 미학을 보여준 것이 초기의 특징이었다. 소재가 도전적이고 충격적인 만큼 언어 표현에서는 상대적으로 무잡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 후의 제2시집 『귀촉도』를 전후해 그는 귀향자의 모습을 뚜렷이 하면서 언어구사면에서도 한결 세련되고 치밀해진다. 훌륭한 시는 소리와 뜻의 서정적 통일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음률성은 기억촉진적이기도 하다. 소리와 뜻의 조화란 관점에서 보면 『귀촉도』에서 제3시집 『서정주시선』에 이르는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모든 유럽국가가 1870년에서 1914년 사이에 '전통' 을 대량 생산했다고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지적하고 있다. 문학적.개인적 차원에서 '전통' 창제를 시도한 것이 시집 『신라초』 『동천』의 세계다. 그것은 독자적인 신라정신의 구축이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불가피하게 했고, 독자에 따라 찬.반과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도 했다. 갑년을 전후한 시기에 미당은 대담한 산문 지향을 통해 새로운 경지를 연 『질마재신화』를 선보인다. 전통적 농경사회와 그 기층민 문화의 시적 탐구인 이 걸작 산문시집은 가장 독자적이고 성공적인 민중문학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미당은 우리 역사에서 취재한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와 시로 쓴 자서전 『안 잊히는 일들』을 선보여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아무거나 붙들고 무슨 말을 해도 시가 되는 것을 두고 득도의 경지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쿤데라가 독특한 의미를 붙여 전파시킨 키치의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다. 넓이와 깊이를 아우르고 있는 미당 시는 부족방언의 세련이 거둔 매혹적인 시적 승리다.

미당의 빛나는 성취에는 타고난 천분과 뼈깎기 노력 이외에도 개인적 행운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장수와 함께 8.15 해방을 서른 초입에서 맞았다는 사실, 시인으로서의 원숙기가 경제성장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연조차도 강자의 편을 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장수 또한 의지와 노력의 소산임을 그의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나 뛰어난 재능은 희귀한 법이다. 살아 있는 고전이 영세한 우리 터전에서 전범에 값하는 미당의 시는 현대의 고전으로 숭상돼야 마땅하다. 미당시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한국어의 마스터는 불가능하다.

유종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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