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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읽기] 방송의 무례 경계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스무 해 넘게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주인공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개그맨 이경규씨는 대단한 사람이다. 수없이 많은 반짝스타들을 은하계에 잠재운 채 그의 생명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몰래카메라' 에서 빛을 발한 후 '양심냉장고' (이경규가 간다)를 거쳐 요즘은 '보고 싶다 친구야' 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가 시청자의 눈길을 당긴 아이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해진 각본 없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만들어 승부한다는 것이다. 리얼리티에 웃음을 결합시킨 에너지원은 물론 그의 뛰어난 순발력이다.

'보고 싶다 친구야' 는 '야! 한 밤에' '(KBS2 매주 목요일 밤11시 방송)라는 프로그램의 중심코너다. 두 명의 연예인을 카페에 불러놓고 그들이 그 시간 (자정부터 새벽 2시 정도까지) 그 장소에 얼마나 많은 '친구' 를 불러낼 수 있는지 경쟁하는 포맷이다. 물론 촬영 중이라는 건 비밀로 한다.

도입부에서 진행자는 '이경규의 신인간성 테스트' 라고 크게 외친다. '보고 싶다' 는 유혹(□)은 상대의 인간성을 확인하는 덫일 뿐이다.

이 프로그램의 안쪽에는 오늘날 오락프로그램 제작진의 고뇌가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웬만한 연예인은 PD가 부르면 출연해 주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지금은 그런 '미풍양속' 이 완전히 사라졌다.

스타를 모시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에 비유될 정도다. 자존심이고 권위고 필요없다. 온갖 네트워크를 가동해 섭외에 성공하는 PD가 유능한 PD라는 것이 방송가의 불문율이 된 지 오래다.

'보고 싶다 친구야' 는 스타가 스타를 섭외해 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PD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인 셈이다. 6월 14일 방송분에서 김건모는 무려 9명의 스타들을 불러내는 친화력을 과시했다.

그 중에는 함께 술을 마시다 졸지에 불려나온 안재욱과 차태현이 있었는가 하면 영문도 모른 채 왔다가 시종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 한 마디 제대로 안한 농구선수 서장훈도 있었다.

심지어 개그맨 유재석은 오자마자 '뒤가 급하다' 며 화장실로 직행하는 지극히 '인간적' 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PD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포맷이 아니면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 김건모.안재욱.차태현.서장훈 등 당대의 인기인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남는다. '스타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는 취지는 나무랄 게 없지만 본인이 공개를 원치 않아 보이는 사적 공간까지 카메라가 침범해 시청자에게 제공해야 하는지는 풀어야 할 숙제다. 리얼리티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역시 휴매니티다. 강요된 리얼리티는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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