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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진료비 삭감에 환자들만 골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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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서울의 모 병원에서 간경화를 앓던 40대 남자의 병세가 뇌사(腦死)직전 상태까지 악화했다. 혈당 수치가 갑자기 정상의 10배인 1천으로 올라가 머리에 손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 병원 의사 李모씨는 "1주일에 세번 이상 혈액 속의 당.칼륨 수치를 검사해야 하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검사비를 삭감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한번만 해 이런 일이 빚어진 것" 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 차원에서 정부가 보험진료비 심사를 대폭 강화하자 병원들이 '방어적으로' 진료하는 바람에 진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들은 심사평가원에서 진료비를 삭감당하자 4월부터 자체 심사규정을 만들어 의사들이 이 기준에 맞춰 진료토록 해 금기시된 진료나 처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 진료 부실화=지난달 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金모(30)씨는 환자의 증세가 갑자기 악화해 혈소판을 10파인트 투여했다. 그는 2파인트로 제한하는 병원 지침을 어겼고 건강보험 처리가 안되는 8파인트 분의 비용을 병원이 부담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써야 했다.

金씨는 "건보 재정 파탄 전에는 2파인트 넘게 쓰더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건보 처리가 됐으나 최근에는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고 말했다.

서울 모 종합병원 신경외과 李모 과장은 종전에는 뇌종양 환자에게 M뇌압강하제를 사용했으나 최근 삭감당하자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 약을 투여하지 않으면 숨골 압박으로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고 걱정했다. 서울시내 다른 종합병원은 수술 후 고열이 있는 환자에게 세균 배양검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유는 마찬가지다.

◇ 문제점 및 전망=심평원은 일부 질환과 새로 도입하는 의료행위와 약에 대해서만 심사기준을 두고 있고 대부분은 경험적 기준에 따라 과잉진료 여부를 판단한다. 건보 재정 파탄 이후 기준을 강화하지는 않았지만 심사인력을 2백여명 늘렸고 정밀하게 심사한다. 현지 확인조사도 강화했다.

인의협 광주.전남대표 홍경표(洪京杓.43.내과 개업의)씨는 "심평원이 최근 들어 환자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무조건 과잉 진료라고 판정해 진료비를 삭감한다" 면서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환자들에 대한 부실 진료로 메우는 꼴" 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 진료비 심사를 강화해 연간 2천6백66억원(올해 1천7백77억원)을 절감한다는 목표치를 정해 놓고 있다.

전진배.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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