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미국에 부는 레이건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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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에 내리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마주치는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공항이름이 '레이건 공항' 이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 펜타곤(국방부 청사)에 이어 둘째로 큰 연방청사 국제무역센터를 지나게 된다. 이 건물은 로널드 레이건 빌딩이다.

레이건이란 이름은 이밖에도 여러 곳에 있다. 지난 3월에는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이 진수(進水)됐고 신시내티 고속도로, 캘리포니아 법원청사, 일리노이 중학교 그리고 텍사스에 있는 보수성향 연구재단 등에 레이건이 붙어 있다.

치매에 걸려 오래 전에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후퇴한 90세의 레이건. 그는 아직 사망하지도 않았으며 역사의 평가가 채 끝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노예해방과 국가통합의 영웅 에이브러햄 링컨,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부터 미국을 구해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미국 3대 '영웅 대통령' 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인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공산주의와의 최종 레이스에서 승리해 '강한 미국' 을 부활시킨 공로 때문이다.

그런 레이건을 놓고 미국인은 요즘 행복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몰고온 보수주의 물결을 타고 레이건 신봉자들은 기념사업을 더욱 밀어붙이고 있다.

대다수 민주당원을 비롯한 신중론자들은 이에 대해 레이건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레이건 지지자들의 가장 야심찬 계획은 10달러 지폐에서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얼굴을 밀어내고 레이건을 넣으려는 것.

그들은 또 링컨기념관이 있는 유명한 내셔널 몰 광장에 레이건 기념관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중 내셔널 몰에 기념관을 추가로 지으려면 해당되는 사람이 사망한 지 25년이 지나야 한다는 법안에 서명했었다. 지지자들은 법안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은 레이건 지지자들이 너무 설친다고 지적한다. 애리조나 고속도로에 레이건 이름을 붙이자는 법안을 반대한 주 상원의원 매리 하틀리는 "우리 주에는 링컨이나 워싱턴 이름을 딴 도로도 아직 없다. 하물며 역사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사람에 대해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라고 묻는다.

그래도 열성파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 네명의 얼굴을 새긴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 레이건이 다섯번째 얼굴로 등장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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