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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60>김춘수, 굴곡의 삶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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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호 10면

김춘수 시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두 편의 시집이 있다. 하나는 1959년 출판된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꼭 10년의 공백기를 거쳐 60년대 막바지부터 ‘현대시학’에 연재를 시작해 1년 반 만에 완결한 연작 장시 ‘처용 단장(處容 斷章)’이다. 비평가들은 이들 두 작품이 ‘현실과 사물을 직시하는 태도’에서 이른바 ‘무의식의 세계를 추구하는 자세’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한다. 김수영 시인이 초기에는 모더니즘을 추구하다가 60년대 이후 현실참여의 극렬한 시로 방향을 바꿨던 점과는 정반대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김춘수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와 같은 변화와 굴곡의 흔적은 비단 작품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간혹 나타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김춘수는 1922년 경남 충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교 성적은 늘 1등을 다툴 정도로 뛰어나서 부친은 그를 서울의 경기중학에 입학시키고, 뒷바라지를 위해 식구가 모두 서울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정신적 방황과 갈등 끝에 졸업을 석 달 앞두고 자퇴한다. 부친의 뜻에 따라 일본에 유학한 그는 법대에 입학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가 우연히 헌책방에서 일어로 번역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사 읽으면서 방향을 바꿔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어렵게 입학한 대학도 결국은 졸업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한 것을 문제 삼은 일본 경찰이 그를 체포해 7개월 동안 구금한 끝에 학교를 퇴학시키고 강제 송환한 것이다. 해방 뒤 김춘수는 몇몇 중학교의 교사로 전전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59년에 이르러서야 그는 문교부의 대학 교수 자격 심사를 통과해 국문학과 교수의 자격을 취득했다. 국립 경북대학교의 강사를 거쳐 정식으로 교수가 된 것이 60년대 중반이었다. 70년대 들어서면서 국문학과의 주임교수를 맡으면서 그의 시도 완숙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경북대를 물러나게 된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 뜻하지 않은 일을 ‘모자 사건’이라 부른다. 코미디 같은 그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경북대에 새 총장이 부임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동창이라는 김모 총장이었다. 김춘수는 50대에 접어든 이후 머리가 너무 많이 빠져 신체의 일부처럼 늘 베레모를 쓰고 다녔는데 김 총장에게는 그 모자가 볼 때마다 눈에 거슬렸다. 어느 날 교수회의에서 김 총장은 김춘수에게 정색을 하며 ‘회의 중에는 모자를 벗어 달라’고 요구했다. 김춘수는 ‘모자를 쓰고 안 쓰고는 내 사생활인데 총장이라고 교수의 사생활까지 간섭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맞섰다. 그 뒤로 총장과 김춘수는 사사건건 맞부딪혔고, 결국 김춘수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곧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발탁되고 유신 말기에는 문과대학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니 김춘수에게는 ‘모자 사건’이 전화위복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이후의 정치적 격변기에 김춘수에게는 세속적인 의미의 ‘승승장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김춘수는 안동 출신의 민정당 사무총장인 권정달의 천거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된다. 경북 지역의 학계에서 마땅한 인물을 찾다 보니 김춘수가 낙점된 것이다. 그 뒤로도 83년에는 그가 재직했던 경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는가 하면 예술원 회원에 이름을 올렸고, 국회의원 4년 임기가 끝난 뒤에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의 문예진흥원 고문직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과 한국방송공사(KBS) 이사를 지내고 ‘은관문화훈장’까지 받기에 이른다.

말년의 김춘수는 자신의 그와 같은 이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몹시 곤혹스러워했다고 한다. 김춘수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순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굳이 내색하려 하지도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가 세상을 요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요리한 것이었다.

75세이던 97년 그는 생애 마지막으로 자전 소설 ‘꽃과 여우’, 그리고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내놓는다. 이 글들은 현실 세계로부터 자신만의 내면세계 혹은 무의식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했던 그의 문학적 본질이 짙게 배어 있다. 아마도 그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어쩔 수 없었던 현실적 삶을 마지막으로 변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춘수는 82세를 일기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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