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천안함 침몰] “힘들다고 말려도 굳이 하시겠다고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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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주호 준위의 딸 슬기양이 2일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제가 만약 그날 그 자리에서 말렸더라도 아빠는 물에 들어가셨을 거예요.”

고 한주호 준위의 빈소에서 만난 딸 슬기(20)양은 “아빠는 누가 붙잡아도 (후배들을 구하러 물에) 들어가셨을 분”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한 준위가 경남 진해 집에서 구조 현장으로 떠날 때 슬기양은 아빠와 함께 있었다. 엄마는 등산을 갔었다.

“아빠에게 힘들다고, (천안함 구조 작업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굳이 하시겠다고….”

아빠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조심하셔야 된다”며 아빠를 보냈다. “아빠가 짐을 급하게 꾸리시느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했어요.” 슬기양이 고개를 떨구었다.

다음날 아빠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아빠 사랑해요’ 문자를 보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한 준위는 순직했다.

슬기양은 대구대 영어교육과 2학년이다. 학교에서 전화로 아버지의 순직 소식을 들었다.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무슨 말이 입에서 나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친구와 함께 무조건 택시를 잡아 타고 “진해요!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빨리 가주세요!” 외쳤다. 택시기사가 혹시 백령도에서 구조작업을 하다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진해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기사 분께서 요금을 안 받으셨어요…. 친구가 저를 진해에 데려다 주고 그 택시를 타고 대구로 돌아갔는데 그 요금도 안 받으셨대요.”

‘UDT의 전설’도 딸에겐 한없이 부드러웠다. 딸의 말투를 흉내 내어 ‘딸 사랑하삼~’하고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공부에만 전념하라며 아르바이트도 못하게 했다. 여드름을 치료하러 가자며 딸의 손을 잡고 대전에 있는 피부과를 찾기도 했다.

아빠는 귀여운 질투도 했다. 딸의 휴대전화 초기화면으로 저장된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더니 “뭐 이리 생겼노”하고 전화기를 확 닫아버린 적도 있다. 슬기양은 “이상형이 아빤데…. 정말 아빠 같은 사람 어디서 만날까 싶지만, 그래도 꼭 아빠 같은 사람하고…”라며 울먹였다.

슬기양이 선생님을 꿈꾸게 된 것도 아빠 때문이다. “아빠가 교관 하시는 걸 보면서 저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슬기양은 입관 때 아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 차가운 물속에서…. 우리 아빤 정말 끄떡없을 줄 알았어요. 일할 때 빼곤 운동밖에 안 하는 분이었어요.”

한 준위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올록볼록 돌기가 달린 무거운 훌라후프를 두 시간씩 돌렸다고 한다. 슬기양은 “아빠는 배에 왕(王)자도 있었다”며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다”고 또 말했다.

“입관 때 아빠 얼굴에 마지막으로 뽀뽀를 못해 드린 게 제일 후회돼요. 아빠 얼굴이, 관 안에 누워계신 아빠 얼굴이 너무 차가워서 차마….”

그게 사무쳐서 슬기양은 관에 여러 번 뽀뽀를 했다. 어렸을 때는 뽀뽀도 자주 하고 그랬는데 커서는 왜 자주 안 해 드렸는지 후회스럽다고 했다.

“아유…. 잘생긴 우리 아버지….”

슬기양은 본지 1일자에 커다랗게 실린 아버지의 얼굴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손으로 연방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너무 슬펐는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언제나 정말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어요.”

글=송지혜·심새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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