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빠진 돈세탁 방지법… 속보이는 담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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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세탁 방지법' 의 규제대상에서 정치자금이 빠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9인소위' (3당 총무+3당 재경위.법사위 간사)에서다.

정치권에선 이를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개혁 입법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시민단체에선 '속셈이 뻔한 자기 방어용 담합' 이라고 비난한다.

소위에서 잠정 합의한 골자는 정치자금을 돈세탁방지법의 범죄대상에서 빼고 대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것 두 가지다.

이는 기존 합의안을 뒤집는 것. 지난번에 내놓은 초안은 ▶정치자금을 포함시켜 문제가 있을 땐 선거관리위원회에 통보하고▶(FIU에)계좌추적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

◇ "시민단체의 눈치를 너무 보면 안돼" 〓9인소위에서 민주당 이상수(李相洙)총무는 "FIU가 영장을 통해서만 계좌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법의 취지가 사라진다" 고 제안했다.

이에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는 "계좌추적을 남발,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며 당론을 내세워 반대의견을 재확인했다.

이런 의견차는 이상수 총무가 "그렇다면 정치자금을 제외하자" 고 절충안을 던지면서 풀렸다. 한나라당측이 "정치자금을 뺀 계좌추적권 부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 고 수용 의사를 밝힌 것. 그러면서 여야는 "마약범과 불법 정치자금 조성범을 한 테두리 안에서 다룰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는 논리를 폈다.

"정치자금 문제는 현행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다루면 된다. 정치자금 중 뇌물성 자금은 형법상 뇌물죄 적용이, 비정치인들의 뇌물성 자금은 변호사법 위반죄 적용이 가능하다. " (李相洙총무)

"시민단체의 눈치를 너무 보다 보면 모양이 이상해진다. " (李在五총무)

결국 9인소위는 이 안을 가지고 각 당으로 돌아가 19일 오후까지 승낙을 받아오기로 했다.

◇ 파문과 전망〓이를 위해 3당은 19일 각각 의원총회를 열 작정이다. 그러나 의총에서 추인해 줄지는 미지수다. 우선 한나라당은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결심이 급선무다. 李총재는 정부와 국회 재경위가 내놓았던 '정치자금을 제외하고 FIU에 계좌추적권을 부여한다' 는 내용의 수정안에 대해 "정치자금을 포함시키라" 고 지시한 바 있다.

민주당에서도 조순형(趙舜衡).천정배(千正培)의원 등 일부 의원이 "정치자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수정안을 제출하겠다" 고 벼르고 있다. 9인소위는 이날 "수정안이 나오면 3당합의로 부결시키자" 고 합의했다.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변수다. 일부 시민단체는 " '깨끗한 정치' 의 포기다. 정치자금이 제외된다면 연대투쟁까지 불사하겠다" 는 입장이다.

정치자금법 개정과 FIU의 계좌추적권 문제도 세부 합의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9인소위 멤버인 한나라당 김용균(金容鈞)의원은 "계좌추적 남발이 문제되는 상황에서 FIU의 계좌추적권을 어디까지 인정해 주느냐는 문제는 논란이 많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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