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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익의 인물 오디세이] 박효남 힐튼호텔 총주방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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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유기(酒遊記) 『위스키 성지 여행』의 머리말에 나오는 글이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 위스키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를, 또는 그것에 대한 지극한 심정을 언어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서울 힐튼호텔 조리담당 박효남(40)이사도 그렇다. 만약 그와 우리 사이의 언어가 그의 요리라면 우리는 그가 내미는 '깻잎에 싼 소금구이 스테이크' 를 맛있게 먹고, 그와 감사의 목례를 주고받으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고객이라 하더라도 그가 걸어온 뒤안길을 안다면 그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해서 지나친 태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이사가 최근 서울 힐튼호텔 총주방장(Executive Chef)에 취임했다. 총주방장은 호텔 내 모든 주방과 식당, 그리고 1백60명의 요리사를 관리하는 요리사 최고의 자리로 전세계에 퍼져 있는 힐튼 체인에서 현지인이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가 주방 보조 출신으로 1999년 서른여덟 나이에 이사로 선임됐을 때의 화제와는 그 격이 다르다. 이사는 현지 회사(호텔)가 뽑지만 총주방장은 본사 최고경영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힐튼은 이번에 한국인.외국인 주방장 2원체제를 통합해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는 중학 1년 때 강원도 고성에서 아버지를 따라 상경해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이 신산고초의 사회에 '던져졌다' . 원사(상사)로 제대한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 당시 시골과 다름 없는 서울 창동에 작은 연탄가게를 차렸고, 소년 효남은 중학 시절 모두를 연탄 배달에 바쳤다. 그가 이제 마흔의 나이지만 그로부터 자신이 지나온 날들에 대해 듣다가 필자는 "박이사를 존경합니다" 라고 말했음을 고백한다.

- 가난했다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했어야 하지 않나.

"두 동생도 있는데 부모님께 등록금을 달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부모님 마음이 더 아프셨을 것이다. " (두 동생은 그의 힘으로 대학을 마쳤다)

- 요리계에는 어떻게 입문했나.

"중학 졸업 후 도봉구 의사협회에서 사환으로 일했다. 서울 시내에 나올 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 종로 5가였는데 거기 수도요리학원이 있었다. 사환 일을 계속하면서 학원 문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하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워 자격증을 땄다. 78년에 원장님 추천으로 하얏트호텔에 조리 보조로 취직했다. "

- 보조생활은 어땠나. 주방은 기율도 세다는데.

"모두 고졸 이상인 데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내가 살길은 없다며 악바리 같이 했다. 그리고 재미있게 배우려고 노력했다. 외국사람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빼앗으려고 회화 위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

당시 그의 악바리 같은 노력은 이랬다. 먼저 초보자 전담인 감자 깎기. 일과 중 틈틈이, 퇴근 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집에 도착한 뒤 잠들 때까지 그는 계란을 감자라고 생각하며 손에 쥐고 수없이 깎는 연습을 반복했다.

또 프라이팬을 능숙하게 돌리기 위해 팬 안에 야채 대신 소금을 넣고 감자 깎기 이상으로 연습했다고 한다(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무명의 고교 시절 하루 8백회 이상의 슛 연습을 했다).

둘째, 79년 열여덟살에 방송통신고 입학. 밤 12시 가까이 귀가하는 일과 속에서 그는 어머니가 녹음해둔 라디오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고, 모르는 부분은 출석수업을 하는 일요일에 학교에 가서 배웠다. 83년 힐튼호텔이 문을 열며 사원을 모집할 때 원서에 고졸이라는 한 줄을 더 써넣으며 맛본 기쁨을 남들은 잘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영어 배우기. 특급호텔인 만큼 영어 위주인 요리 용어와 외국 요리사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코리아 헤럴드 영어학원에 등록, 감자 깎는 연습 이상으로 영어에 매달렸다.

하얏트에 프랑스 식당이 문을 열 때 외국인 요리사가 그에게 같이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영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국내 제일의 프랑스 요리 전문가로 성장하는 계기를 잡게 된다. 지금 그의 회화실력은 엉성하게 공부한 영문과 졸업생보다 낫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입사동기 9명 중 가장 빠른 9개월 만에 정식 요리사인 세컨드 쿡이 됐고 이어 곧 퍼스트 쿡으로 진급했다.

- 힐튼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비결이 뭔가.

"응시하면서 나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새 회사에서의 대우를 염두에 두고 퍼스트 쿡이면서도 그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뻥튀기 했다(호텔 요리계에도 보조→세컨드→퍼스트→대리→과장→차장→부장의 계급이 엄격하다).

나는 정직하게 퍼스트 쿡이라고 했다. 그런데 실무현장에서 뻥튀기한 사람들은 그런 자리를 받긴 했지만 일을 소화하진 못했다. 능력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수에 맞게 욕망을 가졌고 능력껏 최선을 다했다. 사람은 풍선이 돼선 안된다. 터지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

- 능력껏 했다는 설명으로는 뭔가 부족하지 않나.

"어느 해 상사가 해외연수를 갔다. 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상사가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했다. 물론 나를 위해 열심히 했지만 음식 맛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더 그랬다. 회사와 진정한 믿음이 생겼고 1986, 87년 프랑스.벨기에 연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공부는 평생공부가 중요하다. 공부할 시간은 때가 되면 생긴다. "

인터뷰 전반부 내내 필자는 담배를 피워댔다. 그래 조금 미안해져 "술.담배는 하지 않느냐" 고 물으니 "직업이 음식 맛을 보는 거라 술.담배를 하면 감각을 잃기 때문에 안한다" 고 했다.

그의 평생공부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입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방송통신대 공부는 방송통신고와 달리 직장생활과 함께 꾸려가기가 힘들어 도중에 그만 뒀다. 대신 지난해 전북 무안에 본교가 있는 초당대학의 조리과학과 3학년에 편입, 분교격인 서울지역 학습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교수를 하지 무슨 학생이냐" 는 주위의 말에 그는 '배움에는 끝이 없고 본분을 벗어나면 가식이 될 것' 이라는 생각에 "먼훗날에도 강의를 할 생각은 없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오는 많은 요리 관련 편지에 대해선 가능한한 답신을 보내고 있다.

이헌익〔문화.스포츠 에디터〕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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