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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민노총과 예술단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물고 뜯고 싸우는 세상의 화기가 하늘을 덮어 최악의 가뭄이 왔다는 가까운 지인의 가뭄 원인 진단(?)이 제법 일리있게 들리는 요즈음의 최대 이슈는 단연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아니었나 싶다.

세종문화회관의 노조원

억대 연봉자들이 수두룩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전위가 되어 벌인 이번 파업은 서민들의 생활이야 아랑곳없이 '세(勢)과시를 위해 조직의 이익만 관철하려 한다' 는 비난 여론만 비등케 했다.

어느 택시노동자의 '약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파업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는 강변도 민주노총의 합법이 아닌 파업을 향해 던진 서민들의 일침일 것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이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자충수가 됐다는 얘긴데, 민주노총의 세 과시(?)를 위한 무리수는 대한항공의 경우만이 아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를 비롯, 한국냉장 등 23개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 서비스노조 자료 안에는 예술기관인 세종문화회관 노조도 들어 있다. 민주국가에서 공공부문이라고 해도 적법절차에 의한 쟁의를 한다면 이의가 있을 수 있으리요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세종문화회관 노조라고 밝힌 1백27명의 노동자가 회관의 일반직원이 아니라 소위 우리가 예술가라고 부르는 시립예술단체 단원이라는 점이다.

연주자.성악가.배우로 이루어진 단체 단원 중 41%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노조를 결성하고 민주노총의 세(勢)안에 뭉쳤고 그 지도를 받으며 또 하나의 투쟁전위로 육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과연 공공예술단체의 노동조합결성이 현행법상 가능한 일이라 치더라도 법정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반 근로자와 예술단체는 근본적으로 조건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대한항공 노조와도 다르다. 민주노총이 약자인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5일 근무제도도 예술단체 노조와는 먼 나라 얘기다.

시민세금으로 운영하는 서울시향의 경우 공연 없는 날 단원은 통상 2시간정도 연습하고 집에 간다. 지난해 이 단체는 상.하반기 휴가, 공연휴가 등을 포함해 1백20일 이상을 집에서 쉬었다. 일반 노동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근무조건이다.

예술단체의 생명은 예술적 기량이고 이 기량을 평가받고 정예화해 수준 높은 예술성으로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의무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연계한 예술단체 노조의 그동안의 핵심주장은 창작환경이나 복지가 아닌 연말 예능도 평가에 따른 연봉제를 거부하고 해마다 월급이 올라가는 호봉제로 급여체제를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시향에 입단하면 실력과 상관없이 최하의 호봉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 사회주의 체제하의 소련과 중국에서도 예술단체만은 특수성을 감안, 예능도 평가에 따라 탈락에서 파격적인 대우에 이르기까지 일반 근로자와 다른 차원에서 운영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본말이 전도됐다.

파업까지 안갔지만 이번 연대투쟁의 쟁점은 과반수 미만의 노조가 단체인사위원회에 사측과 과반수 동수로 참여하겠다는 것이고 50%의 봉급인상, 채용과 동시에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조가입을 의무로 하는 유니언숍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예술가들도 노동자인가

이 쟁점의 협상을 위한 노조측 대표는 민주노총 산하 지하철공사노조 간부라고 하니 민주노총은 과연 노동조건이 열악한 사회적 약자도 아닌 예술단체를 노동의 논리로 대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간다. 예술단체가 받는 급여는 노동에 대한 대가인 임금이 아니다. 예술가가 벌어들이는 소득인 출연료는 생산요소적 관점에서 볼 때 노동의 산물로 분류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소득을 토지에 대한 대가인 지대로 분류한다. 재능의 희소성에 따라 수요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예술가가 받는 출연료이기 때문에 '경제적 지대' 라고 부른다. 노동에 대한 임금의 개념으로 재능값을 지불하다 보면 기량 향상에 대한 의욕이 감퇴하고 적당주의적 타성에 빠져 위대한 예술작품이 탄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공공예술단체가 침체한 데는 예술가의 이러한 봉급근로자화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득권 수호가 아닌 열린 경쟁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예술가들까지 민주노총이 돌봐야 할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민주노총이 낮은 곳의 노동자는 보지 않고 세만 불리다가 여론을 잃는 무리수를 두지 않길 바란다.

홍사종 숙명여대 교수 ·문화관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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