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이상 8명 중 1명 밤잠 설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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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정모(25·여)씨는 1년 전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잔다. 누워도 1~2시간 정도 뒤척이는 게 일상화됐다. 어렵사리 잠이 들어도 무수히 많은 꿈에 시달리고, 그나마 1시간도 안 돼 다시 눈이 떠진다. 정씨는 “취업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서 이런 증상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다 보니 다음날 일상생활까지 지장을 받는다. 정씨는 결국 지난달 초 병원을 찾았다. 그는 불면증과 초기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 중이다.

15세 이상 우리 국민 450만 명가량이 주 3회 이상 불면증세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수면역학센터가 2008∼2009년 전국의 15세 이상 남녀 2357명을 조사한 결과를 전체 국민에 대비한 수치다.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가운데 12%(284명)가 주 3회 이상 불면증세를 보였다. 불면증 증상 가운데 ‘잠이 든 후 자주 깬다’는 비율이 8.3%로 가장 높았다. 일반인들이 흔히 불면증이라고 생각하는 ‘잠들기 힘들다’(2.3%)는 증상보다 3.6배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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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주도한 가톨릭의대 홍승철 교수는 “‘잠이 든 후 자주 깬다’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은 스트레스·걱정거리·코골이·무호흡증·비만 등이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조사 대상자의 코골이 비율은 8년 전인 2001년(홍 교수팀이 같은 방법으로 조사)에 비해 남성은 8.1%→13.7%로, 여성은 2.8%→6.2%로 늘었다. 수면 무호흡증 유병률은 남성 4.7%, 여성 2.6%로 조사됐다. 고도 비만도 두 배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대별로는 젊은 층(25∼34세)이 ‘잠이 든 후 자주 깬다’는 응답(9.7%)을 많이 했다. 취업과 사회생활의 시작, 결혼 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해석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분류되는 35∼44세(5.5%)나 45∼54세(8.1%) 연령대보다 수면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정명훈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직장에서의 경쟁·과로·실직 등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가 심화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이 생기고 이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불면증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만성 불면증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신경과 신원철 교수는 “불면증을 앓는 사람의 60%가량이 5년 이상 고통을 받고 있다”며 “치료가 늦어져 불면증이 만성화되는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2일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리는 ‘아시아 수면역학센터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불면증의 네 가지 증상=①잠들기 힘들다 ②잠이 든 후 자주 깬다 ③새벽에 너무 일찍 깨서 더 이상 못 잔다 ④자고 일어나도 피로 해소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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