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야구를 TV로 봐요? 세상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지난달 27일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 잠실야구장. 두산 베어스 서포터스 ‘베사모’ 회원들이 승리를 기원하며 헹가래를 하고 있다.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이 한 말입니다. 당연히 1년 중 가장 기쁜 날은 야구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겠죠. 지난달 27일 SK-한화의 공식 개막경기를 시작으로 프로 야구가 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했습니다. 프로야구는 이제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패스타임(Pastime)이 됐습니다. 지난해 590만 명 이상이 야구장을 찾았고, 올해는 65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생스럽게 야구장에는 왜 가느냐? 안방에서 편안하게 텔레비전으로 보면 되지.” 야구 문외한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네모난 상자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열정·사랑·감동이 있는 곳이 야구장입니다.

사랑이 익어갑니다, 온가족이 한마음 됩니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찌들었습니까. 부산 사직 구장으로 가십시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는 사직구장에서 3만 명이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다 보면 잠시나마 세상 모든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습니다. 이때만큼은 너와 내가 따로 없고, 이겨야 하는 상대도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 울림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최고의 프러포즈를 원하십니까. 서울 잠실과 사직구장으로 가십시오. 결혼 6개월의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은경(29)씨는 지난해 5월 14일을 잊지 못합니다. “난생처음 야구장에 갔는데 5회가 끝난 후 갑자기 남자친구가 단상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야구장 프러포즈는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습니까. 대구 구장으로 가십시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광판에 써내려 가십시오. 그 감동은 정성 가득 담긴 편지 한 통 못지않습니다. 아니 더 진한, 가슴 먹먹한 사랑을 전해 줄 것입니다.

따뜻한 봄날의 피크닉을 원하십니까. 인천 문학구장으로 가십시오. 와인을 마시면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고, 푸른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편안하게 야구를 볼 수 있습니다.

9회말 스리아웃까지는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올해도 삶이 팍팍합니다. 힘듭니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고 희로애락이 녹아 있습니다. 위기 뒤에 찬스가 오고, 찬스 뒤에 위기가 오는 것이 인생사와 마찬가지입니다.

9회 말 투아웃. 아웃 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게 바로 야구입니다. 지금 삶이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도 기사회생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야구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명포수였던 요기 베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요.

당신에게도 역전 가능한 9회 말 투아웃이 있습니다. 일단 야구장에 가서 폐부 깊숙한 곳에 쌓여 있던 응어리를 토해 내십시오. 마음껏 소리 치고 즐기십시오. 가슴이 뻥 뚫릴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십시오. 마치 새 이닝이 시작되는 것 처럼….

글=이석희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