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링컨 닮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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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태어난 미국대통령은 링컨 말고도 여럿이다. 스스로를 '평민의 대통령' 이라고 부른 앤드루 잭슨(7대)이 미국 최초의 통나무집 출신 대통령이다.

그의 부모는 잭슨이 태어나기 2년 전(1765년)에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발을 들여놓은 대다수 서민들로서는 급한 대로 통나무를 자르고 깎아 보금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집에서 미합중국 대통령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제임스 폴크(11대).밀러드 필모어(13대).프랭클린 피어스(14대).제임스 뷰캐넌(15대).에이브러햄 링컨(16대).앤드루 존슨(17대)이 그들이다. 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1831년생)은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마지막 미국대통령이었다. 그 후의 대통령들이 다들 부자였다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주거환경이 개선된 덕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통나무집 대통령(log cabin president)' 중에서 단연 유명한 이는 링컨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딛고 대통령이 되어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남북전쟁의 승리자였으면서도 패배한 남부를 억압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 남부연합의 대통령으로 링컨의 최대 정적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1865년 링컨이 암살된 후 "남부연합의 전쟁패배 다음으로 암울한 일은 링컨의 죽음이다" 라고 애도했다.

링컨은 종종 언론으로부터 독재자.폭군.광대.반역자.얼간이.미치광이 같은 상식 이하의 말들로 공격받았다. 그래도 천부적인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결단력.비전.인간미에다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까지 링컨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성을 두루 지닌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정치인이라면 한번쯤 링컨을 닮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는 빼고). 민주당 김중권대표도 며칠 전 "모 재벌회장이 나에게 '링컨대통령의 이미지와 접목하라' 고 충고하더라.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낸 뒤 변호사가 됐고, 지역화합에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였다" 고 말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는 "다음에 TK(대구.경북)사람이 정권을 잡지 못하면 TK는 YS.DJ시대에 이어 15년이나 정권을 잡지 못하는 셈" 이라는 취지의 말을 곁들였다. 지역화합은커녕 지역감정만 부추긴 꼴이다. 너무 큰 인물에 자신을 대입(代入)하려다 실수한 걸까.

노재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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