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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장 이 문제] 경주여중 옮길 자리 마련 '감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경주여중 자리에 도로만 뚫린다면 도심이 탁 트일 텐데…."

경주여중 인근에 사는 이상웅(42 ·회사원)씨가 술자리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다.

이씨는 "관청 ·주택 밀집지역이 경주여중에 꽉 막혀 옴쭉달싹할 수 없는 곳이 됐다"며 "학교를 옮기고 도로를 내거나 공원을 만들면 경주 도심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주 도심인 북부동에 있는 경주여중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하지만 이전장소가 마땅찮아 경주시교육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학교 이전문제가 불거진 것은 1996년 9월.

46년에 개교해 일부 교사(校舍)는 창고를 연상케 할 정도로 낡은 데다 도심 도로를 가로막아 도시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주교육청은 학교 이전계획을 세우고 용강동에 5천평의 터도 마련했다.그러나 학교 공사장에서 신라시대 유적이 발견돼 3천평이 사적지구로 지정되면서 신축작업도 중단됐다.

경주교육청은 이어 경주여중 졸업생들로 구성된 학교이전대책위원회(위원장 임진출 한나라당 의원)와 협의한 결과 사정동의 신라초교를 이전장소로 정했다.

이 학교의 학생수가 3백명에 지나지 않고 인근에 월성·황남초등이 있어 학생들을 두 곳으로 나눠 전학시키면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같은 계획이 알려지자 신라초교의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수차례에 걸쳐 학부모 여론조사를 하고 시민공청회까지 열었지만 '반대'라는 의견이 우세해 최근 이마저 포기했다.

경주교육청 관리담당 남진기(49)씨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할 문제지만 수년째 매달려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학교측도 난감해 하고 있다.잘 될 것같은 이전작업이 잇따라 좌초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사공효웅(59)교감은 "도심의 숨통을 틔우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시설도 마련해 주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경주교육청은 최근 다시 학교를 지을 만한 터 찾기에 나섰다.

문제는 터 매입비와 건축비 등 1백2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지금의 학교 땅이 팔릴지도 의문이다.경주시가 사들여 길을 내거나 공원을 만들 수도 있지만 "예산이 없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경주교육청 관계자는 "이전대책위와 함께 학교 터 물색작업을 벌이는 등 힘을 모아 반드시 이전작업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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