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은 총격, 南은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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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한이 자기 관할구역의 침범 사태에 대해 어떤 태세로 임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지난 열흘 사이에 발생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정부는 6월 초 북방한계선(NLL)과 제주해협을 침범한 북한 상선들을 군함의 호위를 붙여 안전 통과시켜 주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은 지난달 말 조업 중 조류에 밀려 동해상 NLL을 살짝 월선한 우리 어선 제15수성호에 총격을 가했다.

정부는 북한의 비위를 건드릴까 걱정하듯 북한에 선박 항해를 사전 통고해 주면 무해통항권을 허용하겠다고 앞장서 접근했다. 반면 북한은 어로 지도선으로 추정되는 무장 선박이 현장 지침대로 계류 준비 지시에 불응한 수성호에 발포,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북한은 남북한 선박이 상호 수역을 무해통행하도록 하는 해운합의서 체결을 위한 당국간 회담 및 NLL 침범을 논의하기 위한 유엔사 비서장 회의를 제의한 우리측에 무반응과 불응으로 대응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수성호 피격 사건과 관련, 북한에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적극적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수성호 선장을 행정 조처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의 수성호 조처 방침이 법에 기초한 것이어서 시비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다같이 NLL을 침범한 범법행위의 두 주체에 대해 북쪽엔 관대하게, 남측엔 법대로 처리한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국민 누구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정부는 또 우리 함정과 북한 상선간의 충돌 사태를 사건 발생 후 나흘간 숨긴 것도 석연치 않다. 정부가 우리 수역을 침범한 북한 상선에 대해 법에 따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발표할 경우 일어날 여론의 역풍을 고려, 고의로 은폐하려 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북한이 우리의 진취적 제의에 불응하는 한, 우리 영역과 관할 수역에 대한 주권 행사를 단호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이 호혜평등의 자세를 취해야 남북한이 상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의 합리적 제의에 호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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